To. 후배 여성과학기술인에게
일 잘하는 여성의 핵심 키워드는 나이나 직함에 따라 달라집니다. 한결 같은 모습으로 일하는 것도 좋지만 요구되는 능력이나 기대치가 달라진다면, 적절히 변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Photo Image](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3/11/15/498715_20131115134516_626_0001.jpg)
`20대 여성의 핵심 키워드는 프로젝트다. 눈앞에 주어진 일을 완성도 있게 수행하는 것. 묵묵함, 열정, 희생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가산점을 얻을 수도 있다. 30대 여성의 경우는 매니지먼트(management)다. 입사 후 5년 정도 지나면서부터 관리해야 하는 일과 직원이 생기고, 상사의 신뢰가 두터워지는 시기다. 좀 더 복잡하게 얽힌 조직 속으로 능숙하게 뛰어드는 게 관건인 때이다. 40대 여성의 키워드는 멘토다. 특히 덕(德)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직장 여성들이 바로 이것에 약한데, 본인의 성과를 내는 데 집착하지 말고 후배 조력자가 돼야 한다는 의미이다(한국의 파워여성 발췌)`
30대에는 조직 속으로 능숙하게 뛰어드는 게 핵심인 셈이죠. 요즘 조직 생활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 인간관계가 가장 어렵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는 중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는 일은 참 힘들구나` 싶습니다. 그래도 힘든 상황을 완벽하게 극복하려고만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사회에서 대부분 직장 여성이 결혼과 동시에 회사일, 엄마, 아내, 며느리, 딸 등 최소한 3~4개의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성실함과 균형감입니다. 자신이 맡은 회사 일에서 꾸준하게 성실함을 보여줘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정도로 자기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려다 보면, 사실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는 일은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자녀를 비롯한 가족에게 `평범한 엄마`처럼 못해주는 데 대해 너무 미안해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내 아이에게 엄마가 늘 고민하고 안달하는 모습이 아닌, 실력 있고 당당한 엄마로, 사회에서 인정받는 엄마로 기억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부터 누가 저에게 취미를 물으면 저는 없다고 말합니다. 개인적인 취미를 누릴 정도로 여유로운 시간이 저에게는 도통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 아이에 대한 부채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즐거움을 위해 사용할 시간이 있다면, 그보다는 내 아이와 좀 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에게 일과 가정, 육아 중에서 우선순위는 없습니다. 중요하고 급한 일이 우선입니다. 일 다음이 육아, 그 다음이 집안일, 이런 식으로 정해 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 슈퍼우먼은 없습니다. 일도 잘하고, 가정에서도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일에 너무 완벽 하려고 애쓰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적당히 굴곡을 겪는 것도 나름대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요. 자신에게 너무 엄격 하려고만 하지 말고,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음식을 전업 주부만큼 잘 못한다거나, 학부모 회의에 매번 참석하지 못하거나, 출장 때문에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고 해서 나쁜 엄마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격려할 줄 몰라서, 오히려 아이들에게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엄마가 더 나쁜 엄마가 아닐까요. 자신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주변 사람들도 제대로 사랑할 줄 안다고 저는 믿습니다.
스스로를 한계로 몰아가는 슈퍼맘 콤플렉스를 버리고, 모든 일에 완벽하려 아등바등하지 말고, 중요한 일, 시급한 일 먼저 집중해서 처리합니다. 맡은 역할이 많은 우리는 좀 더 먼 곳을 내다보고 장기전을 준비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훌륭한 조력자를 찾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배우자의 성격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내 일을 계속 지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인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내 길을 따라올 후배가 덕을 볼 수 있도록 길을 닦아주는 일. 그것이 바로 지금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 여성과학기술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From. 황정아 한국천문연구원 창의선도과학본부 선임연구원
제공:WISET 한국과학기술인지원센터 여성과학기술인 생애주기별 지원 전문기관
(www.wise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