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DVD 대여업체 블록버스터가 마지막 남은 점포를 정리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산업 트렌드를 간파하지 못한 기업은 쇠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7일 다수의 외신에 따르면 블록버스터 모회사인 디시네트워크는 내년 초까지 마지막 남은 300여 블록버스터 점포와 우편배송 창고를 닫는다. 2800여 직원은 일자리를 잃는다. 2010년 재정 악화로 파산신청을 한 지 3년만이다.
2011년 블록버스터를 인수한 디시네트워크는 당시 운영하던 1500개 점포와 1만5000명 직원의 고용을 유지할 계획이었다. 수익이 악화되면서 점차 점포를 줄였고 해고를 늘렸다. 이제 마지막 남은 점포까지 사라진다.
조 클레이턴 디시네트워크 사장은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디지털로 바뀌는 소비자의 요구가 명확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기존 점포와 블록버스터 브랜드를 활용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1985년 설립된 블록버스터는 2000년대 중반까지 25개국에 9000개 매장을 두고 4300만 회원을 보유한 초대형 DVD 대여 업체다. 미디어 그룹 비아콤에 인수되기도 했지만 오랜 기간 경쟁사 없이 승승장구했다. 2002년 시장 가치는 50억달러(약 5조3000억원)에 달했다. 영광은 오래 가지 못했다. 동영상 시장이 인터넷을 만나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넷플릭스가 있다.
넷플릭스는 `온라인 DVD 대여`로 시작했다. 넷플릭스는 대여점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과 연체료를 없앤 획기적 사업 모델로 점차 고객층을 넓혔다. 2007년엔 콘텐츠 시장의 변화를 감지하고 과감하게 온라인 스트리밍 사업을 시작했다. 최근엔 자체 제작 드라마로 에미상을 수상하는 등 끊임없는 혁신을 시도했다. 넷플릭스뿐 아니라 아마존닷컴, 애플 아이튠즈 같은 회사와 사업 모델도 블록버스터 시장을 잠식했다.
블록버스터가 산업 트렌드 변화를 손 놓고 바라만 본 것은 아니다. 뒤늦게 온라인 우편배송과 키오스크 대여 방식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2011년부터는 디시네트워크 가입자 대상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무비 패스`도 시작했다.
넷플릭스보다 저렴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고객은 냉정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4~5년 동안 블록버스터 주가는 95% 하락했다. 2009년 4분기에만 4억3500만달러(약 4600억원) 손실을 냈고 결국 파산신청 후 매각됐다.
블록버스터 폐업은 디지털 혁명에 대응하지 못한 기업의 결말을 여실히 보여준다. 변화에 안일하게 대처했고 과거에 연연했다. 130년 전통을 가진 필름 시장의 대명사 코닥의 파산도 같은 이유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세상이 디지털로 달라졌지만 블록버스터는 전통적인 오프라인 가게를 뜻하는 `벽돌과 시멘트 반죽(brick and mortar)`을 고수했다”며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고 전했다.
블록버스터 기업 가치 변화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