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칼럼]한국 반도체 기술의 세계화 전략

지난 10월 제 61회 ISSCC학회 논문 심사를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왔다. 이 학회는 반도체회로 분야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고 학회의 방향과 발표 논문이 산업 및 학계의 실질적 변화를 반영한다는 것은 지난 60년 역사가 증명한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기술분과위원회(TPC) 부의장 신분으로 전체 논문의 방향과 채택 논문 통계를 포함한 거시적 정보들을 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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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준 교수

미국은 의례적으로 100편이 넘는 논문으로 학회 내 강세를 과시해왔으나 올해는 84편을 제출했다. 최근 몇 년 평균치도 70여편으로 떨어졌다. 매년 평균 전체 30%로 수위를 기록했던 유럽도 올해는 47편으로 23%에 그쳐 쇠퇴한 모습을 보였다. 일본은 2010년까지 우리나라의 두 배에 달했으나 지난해에는 25편으로 우리보다 5편이 적었고 올해도 전체 206편 중 한국 23편, 일본 25편으로 대등한 수준을 이뤘다. 이러한 통계는 반도체 시스템 분야에 세 가지 큰 변화를 보여줬다. 지정학적 변화, 기술방향의 변화, 산업의 변화가 바로 그것이다.

먼저 지정학적으로 보면 미국과 유럽, 일본이 갖던 주도권은 이제 신흥 아시아 국가로, 특히 한국과 대만, 중국으로 넘어오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수익률이 30%에 육박할 정도로 부가가치가 높고 파급 효과가 큰 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중국은 지금까지 존재감이 없었지만 올해는 30편 중 8편이 채택돼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그 비중은 아직 3.8%에 불과해 세계 3위인 우리나라의 역할이 크게 기대되는 시점이다.

기술 방향의 관점에서는 두 가지 흐름을 보였다. 하나는 전통적으로 행해져 오던 미세화, 20㎚ 이하의 기술을 적용한 핀펫(FinFET) 등 신기술 중심의 회로 기술이다. 더 큰 흐름은 `시스템`의 강세다. 소형 회로 기술이나 앰프(Amp), 중앙처리장치(CPU) 같은 단품 기술보다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컴퓨터에 필요한 목적 지향적 시스템 솔루션이 더 큰 추세를 이뤘다. 이 분야는 아직 기술이 정립되지 않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산업의 변화 또한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예년과 달랐다. 논문 수에서 주를 이뤘던 무선통신 분야는 다소 누그러졌고, 반대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SW)와 연동해 작동하는 저전력 시스템온칩(SoC), 즉 웨어러블 SoC에 대한 논문은 바이오와 의료 분야와 함께 크게 증가했다. 이는 무선통신 분야가 포화되고 관심이 융합 SoC로 이동했으며 바이오 및 의료 산업 분야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런 중요한 변혁의 시기에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우리의 뜻과 준비 여부와는 무관하게 반도체 기술 분야에서 이미 세계는 한국을 주목한다. 수입품을 대체하기 위해, 또는 국산품을 개발하는 소극적 전략은 우리에게 찾아온 소중한 기회를 잃고, 주도적 흐름을 놓치게 할 수 있다. 세계를 선도하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과제와 정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스마트폰 산업이 극적으로 성장했던 것도 모두 최신 응용 프로세서의 성공적 개발, 즉 반도체 기술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근래 새롭게 전개되는 기술과 산업은 선진 외국들도 같은 시작점에서 출발하는 분야다. 뒤따르는 연구나 흉내내기식 연구보다 세계적으로 이미 경쟁력을 확보한 우리의 반도체 기술을 중심으로 국내 각종 산업을 접목해 IT 분야만이 아닌 각종 산업의 경쟁력을 함께 높이는 융합 시스템 전략이 필요하다. 세계가 한국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견제를 하고 있다. 이 점을 우리 스스로 외면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세계를 선도하는 글로벌 전략을 펼치기 위해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유회준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 hjyoo@ee.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