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네바에서 차로 프랑스 국경 방향으로 20분을 가면 세계 최대 가속기가 있는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의 상징인 원형 모양의 지구본이 나타난다. 이 모형은 물질의 근본을 밝히기 위한 국제적인 협력을 상징한다. 지구본 모형 도로 건너편에는 세계 최대 가속기인 강입자충돌기(LHC)를 운영하고 있는 CERN 본부가 있다. LHC는 둘레만 27㎞에 달한다.

Photo Image
CERN 본사 앞에 있는 지구본 모양의 조형물

◇국경 걸쳐 있는 세계 유일의 연구소

CERN은 가속기와 함께 충돌 입자를 검출할 수 있는 CMS와 ALICE 등 검출기로 이뤄져 있다. 스위스 CERN 본부에서 프랑스령의 CMS 검출기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차로 20분가량을 더 가야 한다. ALICE 검출기로 가려면 다시 스위스로 돌아가야 한다. 이들 시설을 방문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스위스령과 프랑스령을 넘나들어야 했다. 도로 중간에 국경 점검 시설이 있지만 경비는 없었다.

CERN의 연구원들이 수시로 넘나들면서 일일이 이들을 확인하기가 번거롭기 때문이다. 국경을 걸쳐서 있다는 사실이 상징하듯이 CERN은 과학계의 유엔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전 세계의 연구자들이 모여 관심 분야를 파고 있다. 지난달 25일 만난 장 마리 르 고프 CERN 금융·조달/지식이전부문 코디네이터는 “중립적인 나라로 유럽의 중간에 놓이고 연결성이 좋은 곳을 찾다보니 스위스에 설립되게 됐고 프랑스가 인근에 연구소를 세우고 조인하게 되면서 두 국경에 걸쳐 있는 유일한 연구소가 됐다”며 “LHC도 지하 터널 건설 비용이 제일 적게 들고 레만 호수를 피해서 설계하다 보니 스위스와 프랑스를 걸쳐서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CMS 검출기에서 지하 100m로 내려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엘리베이터로 1분10초. 지하에 도착하니 18m 높이의 거대한 CMS 검출기가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입자물리 연구에 쓰이는 검출기는 강입자 충돌시 발생하는 수많은 입자들을 디지털카메라가 사진을 찍듯이 센싱하는 역할을 한다. 이온 충돌을 통해 나오는 입자의 정체와 궤적을 센서를 통해 추적할 수 있는 장치가 검출기다.

CMS 검출기는 관리를 위해 11개의 조각으로 쪼개져 있었다. 실제 실험시에는 이들을 이어 밀폐한 상태에서 진행한다. 검출기는 충돌 이후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는 입자들을 추적하기 위해 센서와 보드, 자성체 등으로 만들어졌다. 힉스 입자 발견에 기여한 CERN의 대표적인 검출기인 두 곳은 CMS가 표준모형의 입자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한다면 ALICE는 빅뱅 상태 재현을 통해 입자의 현상에 대한 연구를 주로 하는 등 검출 방식이 다르다.

◇국제 클라우드 데이터 분석 통한 연구 이뤄져

`평화를 위한 과학`을 구호로 유럽 중심의 20개 회원국이 1954년 설립한 CERN은 2300명의 직원들이 회원국이 분담한 연간 1조2000억원의 예산으로 운영하고 있다. 루디거 보스 단장은 “최근 CERN은 유럽 이외의 국가에도 회원국이 될 수 있는 문호를 개방하는 것으로 정책을 바꿨다”며 “한국도 회원국이 되면 연구와 사업 발주, 인력 채용 등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비회원국인 우리나라는 연구원 96명이 CMS사업단과 ALICE사업단을 통해 참여하고 있지만 현지의 한국인은 4명 정도에 불과하다. 국내 대학과 학교별로 이뤄지던 CERN과의 협약은 국가별 협약으로 사업단으로 주체가 바뀌면서 여건이 나아지고 있기는 하다. 검출기를 통해 확보한 입자의 데이터는 방대할 수밖에 없다. 초당 300MB가 생성되는 데이터는 본부 데이터센터에 원상태로 보관하고 이를 활용해 전세계로 분산돼 있는 연구자들이 분석하게 된다.

데이터가 워낙 방대해 국제적인 분산 처리를 하면서 전 세계의 연구자들이 분석에 나서고 있다. 데이터센터에는 국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나라의 도시를 표시한 지도도 전시하고 있다. `www(웹)`이 이곳 CERN에서 탄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컴퓨팅센터의 직원 데니스 헤거티는 “옆 동료가 데이터 공유와 전송 등을 위해 질문을 입력하면 결과가 뜨도록 한 것이 www였다”며 “당시 웹페이지를 만드는 일을 했었다”고 회상했다. CERN에서 www를 개발했던 컴퓨터도 보여줬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 뒤 설립했던 넥스트사의 컴퓨터였다. 웹의 탄생은 그리드라는 클라우드형 데이터 분석을 통한 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힉스 입자의 실험적 발견도 3000명이 참여해 여러 에너지대로 충돌 시험을 한 방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가능했다. CERN의 성과에는 글로벌 협업과 공유의 정신이 관통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공동취재단·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