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넋 놓고 있다 통신·사이버 주권 다 잃는다

외산 일색 통신장비, ICT 성장 적신호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국내 여행지 중 하나로 꼽히는 남산일대 도성지는 외부 공격으로부터 서울을 지키는 성벽이다.

태조는 즉위 4년째 되던 1395년에 도성 축조도감을 설치하고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 성곽을 쌓도록 명했다. 북악산과 인왕산, 낙산 그리고 남산을 잇는 18.24㎞ 성곽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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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인제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27년 뒤, 세종 4년(1422년)에 대대적으로 흙으로 쌓은 부분을 모두 돌로 다시 쌓고 공격 ·방어 시설을 늘이는 방식으로 이들 성곽을 보수했다. 숙종 30년(1704)에는 정사각형 돌을 다듬어 벽면이 수직이 되게 쌓는 업그레이드를 단행한다. 이처럼 조선 건국 초기 첫 번째 대형 국가 프로젝트는 백성의 안전을 위한 성곽구축이었다.

영토 개념이 육상, 근거리 해상에 국한되었던 옛날과 달리 현대는 사이버 공간도 제4의 국토로 평가된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우방인 프랑스에서도 광범위한 전화 도청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전 직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이 제공한 비밀문서를 분석한 결과 NSA는 작년 12월 10일부터 올해 1월 8일까지 한 달 사이에 7030만 건의 프랑스 전화를 비밀리에 녹음했다고 보도했다.

르몽드에 따르면 NSA는 `US-985D`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프랑스 내 특정 전화번호를 이용한 통화와 문자 메시지를 자동으로 저장해 왔다. 르몽드는 NSA가 테러리즘과 관련된 의심 인물뿐 아니라 프랑스 정·재계 인사들의 전화도 도청했을 것으로 의심된다고 밝혔다.

NSA는 메르켈 총리 등 독일 주요 인사들의 휴대폰도 도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10월 스노든이 제공한 비밀문서를 분석해 NSA이 10년 이상 메르켈 독일 총리의 휴대폰을 도청했다고 폭로했다.

스노든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우방과 적국을 가리지 않고 상대 국가 수장의 휴대폰까지 도청하는 시대다. 북한, 중국, 일본 등 지정학적·정치적 이슈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 각국은 사이버 영토를 지키기 위한 전쟁에 돌입했다.

IT기술력이 우리나라보다 낮은 베트남은 올 초부터 중국산 네트워크 장비를 베트남 통신장비 회사인 비아텔(Viettel)을 통해 자국 기술로 개발, 적용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대통령 지시로 자국 네트워크 사이버 안보점검을 실시한 결과 약 430만대 PC나 서버가 공격을 받았고 정부 주요기관 거의 모든 서버(396개)의 주요정보가 해킹당해 약 380만달러 손실이 있었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다.

미국과 중국에서는 더 놀랄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 오바마 대통령의 재가 아래 중국 IT제품 구매 금지를 법제화(The Consolidated and Further Continuing Appropriation ACT of 2013)했다.

이에 따라 미국 이동통신 사업자인 클린와이어(Cleanwire)는 기존 중국산 와이맥스(Wimax)장비를 2014년까지 교체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중국 역시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정부 기관에 산재한 미국산 통신장비를 자국 기업이 생산한 장비로 교체 중이다.

민간 부분에서도 중국 2위 통신 사업자인 차이나 유니콤을 비롯해 대다수 통신사가 미국산 라우터를 자국산으로 대체하는 사업에 나섰다.

이에 비하면 ICT 강국이라는 우리나라의 대응 수준과 인식은 너무 안이하다. 민간사업자는 물론 정부기관도 외산 장비를 무분별하게 도입하는 경향이 여전하다. 정책과 사업결정에서 누구 하나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수준에서 대체 불가능한 ICT 장비는 장기 프로젝트로 국산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국내 업체들이 기술을 보유한 솔루션은 공공기관부터 도입을 늘려 보호해줘야 한다. 다양하고 큰 규모의 국책 연구개발(R&D)로 관련 생태계에 물과 영양분을 공급해야 한다.

국가 IT안보를 위해 정부, 정부기관, 통신사업자, 자가망 운용자들의 고민이 절실한 시점이다. 창조경제가 다른데 있지 않다.

김철수 인제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charles@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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