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우물 안 개구리` 시험인증산업

우물 안 개구리 시험인증산업

`5조9000억원과 975억원`

시험인증 시장 세계 1위 스위스 SGS와 국내 1위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의 지난해 매출 규모다. KTL을 포함해 국내 7대 시험인증기관의 매출을 합쳐도 4000억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글로벌 기업과 맞붙기엔 체급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다. 국내 시험인증 산업의 현 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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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시험인증산업 경쟁력 분석> 자료:기술표준원

일자리 창출형 고부가가치 서비스로 꼽히는 시험인증산업이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을 못 넘고 있다. 우리나라가 반도체·휴대폰·자동차·조선 등 전 제조업에 걸쳐 세계 최고의 역량을 갖췄지만 정작 산업 경쟁력의 바탕이 되는 인프라는 턱없이 빈약하다.

시험인증은 표준과 기술기준을 바탕으로 시험, 검사, 교정, 인증 등 다양한 고부가가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이다. 제조와 유통 등 기업 활동 지원은 물론이고 안전·환경 등 사회 문제 해결과 신뢰 사회 구축에 기여한다.

지난해 세계 시험인증 시장 규모는 153조원에 달했다. 2010년 132조원, 2011년 145조원 등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추세다.

국내 시장은 8조4000억원 규모로 세계 시장의 5.5%를 차지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제조 기업이 많아 시장 규모가 작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국내 시험인증 기관의 경쟁력은 제조기업 역량과는 동떨어져 있다. 윤영석 의원실(새누리당)에 따르면 국내 7대 시험인증 기관의 인력은 SGS 한 곳의 24분의 1 수준이다. 1980년 이후 연평균 11.7%씩 성장했지만 아직은 글로벌 기업에 비해 매출과 인력 모두 열악한 수준이다. 국내 시험인증 기관이 2000여곳을 넘지만 연 매출이 수억원에 불과한 곳도 수두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지원 정책이 절실하지만 오히려 정부 규제로 발목이 잡히는 경우도 있다. 국내 1위 기관인 KTL은 정부 산하기관인 탓에 신속한 시장 대응이 어렵다. 공공기관이라는 이유로 정규직 충원이 쉽지 않다. KTL 매출은 지난 2005년 511억원에서 지난해 975억원 규모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정규직 정원은 4% 늘어나는데 그쳤다. 비정규직으로 인력을 보충하다보니 체계적인 전문 인력 양성은 요원한 얘기다.

해외 시험인증 기관은 오랜 기간 쌓은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배가했다. 프랑스 뷰로베리타스(BV)의 역사는 지난 18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V는 전 세계에 걸쳐 900여개 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독일 TUV라인란드의 역사도 100년을 훌쩍 넘는다. 해외 65개국에서 500여개 지사를 갖고 있다. 연 매출 규모는 수조원대다.

이들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산업조명 업체 A사 관계자는 “우리 기업이 제품을 수출할 때 해외 바이어가 특정 시험인증 기관 검사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다소 가격이 비싸도 어쩔 수 없이 해외 기관에 검사를 의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체계적인 전문 인력 양성과 꾸준한 국제화로 국내 시험인증 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기반을 갖춘 만큼 발전 가능성은 충분한 것으로 평가된다.

전문 인력 양성책을 만들어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반을 갖춰야 한다. 이렇다할 전문 인력 양성기관도 없이 시장 수요에 맞춰 그때그때 인력을 채용, 교육하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국제화도 시급하다. 지난 몇 년 사이 KTL,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 등이 해외 시험인증 및 인정기구와 교류하며 세계화에 나섰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세계 시험인증 시장 상위 기관들은 모두 수십여개국에 걸쳐 수백개에 이르는 지사와 사무소를 운영한다.

조기성 한국인정지원센터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글로벌화”라며 “처음에는 쉽지 않겠지만 중장기적인 전략 아래 지속적으로 해외 진출과 교류를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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