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오래전 일은 잘 기억난다. 그러나 조금 전에 했던 일이나 생각은 자주 잊어버린다. 음식을 하다 불 끄는 것을 잊어버리는 일이 빈번해졌다. 돈이나 열쇠를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장을 보러 갔는데 막상 마트에 도착하면 무엇을 사러 왔는지 모르겠다. 잘 아는 사람인데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부르지 못할 때도 있다.
#중기. 돈 계산이 힘들다. 오늘이 며칠인지, 지금 몇 시인지, 어느 계절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가족은 알아보지만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이 헷갈린다.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어색한 낱말을 사용해 둘러댄다. 익숙한 장소인데 길을 잃어버렸다. 집 안을 돌아다니거나 했던 일을 자꾸 한다.
#말기.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식사, 옷입기, 세수, 대소변 가리기 등을 제대로 하기 힘들다. 대부분 기억이 상실돼 식구도 알아보지 못한다. 내 이름이 무엇인지, 고향과 나이도 생각나지 않는다. 한 가지 단어만 반복해 말하고 발음도 분명하지 않다. 결국에는 입을 닫는다.
치매 중증도별 주요 증상이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 10명 중 1명(약 9.18%).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노인인구 가운데 치매 환자가 차지하는 비율을 조사했다. 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치매 환자 수는 54만1000명으로 추정되며 여성 38만5000여명, 남성 15만6000여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급속한 고령화로 치매 유병률(65세 이상 전체 노인 인구 중 치매환자 비율)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복지부는 2030년 약 127만명, 2050년 271만명으로 증가를 추산했다. 20년마다 치매 환자 수는 갑절로 늘어나는 셈이다.
#치매는 뇌기능이 손상되면서 인지능력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일상생활에 상당한 지장을 주는 상태를 말한다. 기억력·언어능력·시공간 파악 능력·판단력·추상적 사고 등 지적 능력이 해당된다. 치매를 유발하는 원인 질환으로 세분화하면 그 종류는 70여가지가 있다. 가장 많은 원인질환은 알츠하이머(국내 환자 중 71.3%)와 혈관성 치매(16.9%)다. 이외에도 전측두엽 퇴행, 파킨슨병, 대사성질환, 중독성 질환 등 다양한 원인 질환 때문에 치매가 발생한다.
알츠하이머는 신경 독성물질인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쌓여 뇌 신경세포가 죽으면서 발생하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지금까지 베타 아밀로이드가 어떻게 신경세포에 영향을 주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정용근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알츠하이머 유발에 관여하는 단백질(Fc 감마 수용체IIB)이 베타 아밀로이드를 인지하는 수용체로 신경세포 안에 독성 신호를 전달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정 교수는 “Fc감마 수용체와 베타 아밀로이드 상호작용을 막으면 알츠하이머 치매에서 나타나는 신경독성과 기억력 감소가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전체 치매 환자 가운데 30%는 알파시뉴클린이라는 뇌 신경 단백질 변질로 치매를 앓는다고 알려져 있다. 알파시뉴클린은 건강한 뇌세포에서 뇌 활성을 도와주는 이로운 물질이다. 그러나 자기들끼리 서로 엉키면 치명적 독소로 변해 치매, 파킨슨병 등 다양한 퇴행성 뇌질환을 일으킨다.
신연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교수는 알파시뉴클린 응집독소체가 뇌 활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시냅스에서 신경전달물질이 제대로 분비되지 못하게 해 기억과 인지활동에 악영향을 미치고 치매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신 교수는 “치매 유발 주요 인자인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도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치매를 유발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독소가 스내어라는 단백질에 들러붙어 뇌 세포막 활성을 막기 때문에 스내어 단백질 무력화가 치매 발병 근본 원인 중 하나일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까지 치매를 치료하려는 원인 규명, 치료제 개발 등에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개개인이 치매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예방에 나서는 것이 우선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복지부가 밝힌 치매 예방 관리 수칙 중 첫 번째는 손과 입을 바쁘게 움직이라는 것이다. 효율적으로 뇌를 자극할 수 있는 것이 손과 입이다. 손놀림을 많이 하고 음식을 꼭꼭 많이 씹는 것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흡연은 뇌 건강에도 해롭다. 담배를 피우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1.5배 정도 높다고 한다. 과도한 음주도 뇌세포를 파괴해 기억력을 감퇴시킨다. 치매 원인인 고혈압과 당뇨병 발병 위험도 높인다. 우울증이 있으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세 배 높아진다. 봉사활동이나 취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좋다.
정지향 대한치매학회 교육이사(이화여대의대 신경과 교수)는 “일상생활수행능력 중 기억력과 사회성 연관된 항목이 치매의심환자에서 먼저 장애를 보이고, 이후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돌보는 몸 단장과 치장능력이 중증 단계로 넘어가면서 악화된다”며 “치매의심 환자라도 사소한 변화를 조기에 발견해 일상생활 증진훈련으로 악화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