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한 환경역사학자인 존슨 도널드 휴스 교수(미국 덴버대학교)는 그의 저서 `판의 고뇌(Pan`s Travail, 판은 그리스 신화의 목신)`에서 고대 그리스 문명의 멸망 이유를 에너지원 고갈에서 찾았다. 그리스는 도자기와 청동기 생산에 많은 땔감을 필요로 했고, 무역을 위한 선박 건조에도 나무를 사용했다. 무분별한 벌목은 그리스를 에너지 빈곤국으로 만들어 국력이 쇠약해졌다는 주장이다.

에너지 고갈 문제가 이오니아와 크레타섬에 살았던 고대 그리스인이나 3000년 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동일하다는 것이 흥미롭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숲(나무)이 주된 에너지원이었던 그리스인에 비해 현대인은 석유, 석탄, 천연가스, 원자력, 풍력, 태양력 등 다양한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현대인들의 에너지 사용량은 고대인과 비교할 수 없다.
정부는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에너지원 중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1977년 원자력 발전을 시작으로 1983년 유연탄, 1986년 천연가스를 각각 도입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1980년 61%였던 석유 비중이 2011년에는 38%로 감소했고 석유를 대신해 같은 기간 원자력(2.0%→11.7%), 천연가스(0%→16.8%), 유연탄(7.6%→27.8%)의 비중이 늘었다.
30여 년간 에너지원 다각화에도 우리가 에너지 자립 국가로 가는 길은 멀어 보인다. 2006년 기준 에너지원의 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석탄 수입 세계 2위, 석유 수입 세계 4위, 천연가스 수입 세계 8위 등 만만치 않다.
에너지 자립과 에너지 강국을 향한 정부의 의지는 제2차 에너지기술개발계획(2011~2020년)에서도 결연하게 나타난다. 에너지 기술혁신을 통해 세계시장 10% 점유, 에너지효율 12% 향상, 온실가스 15% 감축을 목표로 삼고 있다. 정부는 제1차 에너지기술개발계획 수립 당시(2006년) 5214억원이었던 연구개발(R&D) 투자규모를 2010년 1조69억원으로 약 193% 늘렸다. 연평균 18% 증가한 것이고,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총 3조7712억원이라는 파격적인 예산을 지원했다. 세계 6위 수준의 투자며 GDP 대비 R&D 투자 규모로는 일본에 이어 세계 3위 수준(2009년 IEA 통계 기준)이다. 또 에너지기술개발의 체계적 기획·평가·관리를 위해 2009년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을 전담기관으로 설립했다.
이 가을 우리는 에너지에 관한 큰 행사와 정책을 만나게 된다. 1924년부터 3년 주기로 열린 `세계에너지총회(World Energy Congress·WEC)`가 오는 13일부터 닷새 동안 대구에서 개최된다. 세계 최고의 에너지 관련 국제회의로, 각국 에너지 분야 최고의사결정권자, 연구자, 기업가, 공공기관 관계자 5000여 명이 참석해 에너지 분야 현안을 논의하고, 최신 기술과 정보를 홍보·교류한다. 우리나라는 1969년 세계에너지협의회에 가입해 회원국으로 활동해 왔고 2008년 WEC를 유치했다.
에너지는 우리 사회를 움직이게 한다. 상품을 생산하고, 의식주를 해결하고, 상품과 사람이 이동하는 등 모든 활동은 에너지 소비 덕분이다. 에너지가 없다면 현대 사회는 정지해 버릴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6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열 번째로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나라다. 에너지원의 수입의존도가 높고,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하기에 국토는 좁고 조건은 열악하다.
에너지 자립국을 넘어 에너지 강대국으로 가는 길은 오직 국민적 관심과 참여뿐이다. 국가적 에너지 계획의 방향은 어떻게 되는지, 에너지 기술 개발과 투자는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지, 에너지원 확보와 공급 형태는 무엇인지 주인의식을 갖고 평가하고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이제 에너지 문제는 그리스 목신만의 고뇌가 아니다. 에너지는 곧 우리의 생존의 문제다.
윤용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선임연구본부장 yjyoon@kier.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