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참을 수 없는 어뷰징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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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 오후 네이버에는 모델 한혜진 비키니 화보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9월 초나 8월 말도 아니고 5월에 촬영한 사진이다. 정상급 모델이 찍은 늘씬한 몸매가 눈길을 끌지만 4개월이나 지난 뒤에 약속이나 한 듯이 나온 기사는 너무 뜬금없다.

#9월 2일 오전 네이버에는 개그우먼 허민의 미모를 칭송하는 기사가 줄을 이었다. 하나같이 전날 방송한 개그콘서트에서 그가 얼마나 섹시했는지를 다뤘다. 허민이 무명은 아니지만 이토록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있나 의아했다.

보도할 가치도 시의성도 높지 않은 두 가지 사례가 대량의 기사로 살포된 이유는 하나다. 바로 `어뷰징(abusing)`이다. 어뷰징은 사전적으로 지나치게 많이, 혹은 잘못 쓴다는 뜻이다. 인터넷 뉴스 분야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의미를 가진다.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독자의 클릭을 유도한다`는 말, 쉽게 말해 `낚시`다. 위의 두 가지 어뷰징 사례는 노리는 대상이 네이버 `뉴스캐스트`에서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로 바뀐 결과다. 제목 한 줄로 네티즌을 낚다가 뉴스캐스트가 없어지자 많은 언론사는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관련 뉴스로 미끼를 갈아 끼웠다. 달라진 점은 미끼가 하나가 아니라 10개가 넘는다는 사실이다.

다수의 언론사가 9월 9일 모델 한혜진 비키니 기사를 올린 이유는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1위가 `한혜진`이었기 때문이다. `한혜진`은 모델이 아닌 가수 `한혜진`이었다. 그가 아침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재혼 생활을 얘기했는데 많은 네티즌이 그것을 최근 기성용과 결혼한 탤런트 `한혜진`으로 혼동하면서 관심이 집중됐다. 10시간에 걸쳐 C스포츠신문은 10건, H경제지는 11건의 한혜진 기사를 썼다. 2일 1위에 오른 `허민` 역시 개그맨이 아닌 미국 프로야구에 너클볼 투수로 데뷔한 벤처사업가 `허민`이었다. 야구하는 벤처 사업가로는 네티즌을 오래 낚을 수 없으니 개그우먼까지 섹시 코드로 떡칠을 해댔다. 네 시간 동안 D스포츠신문이 9건, M종편이 6건, C일보도 4건을 네이버에 올렸다. IT 전문 D신문조차 2건을 따라가기에 바빴다.

물론 네이버만의 일은 아니다. 다른 포털 뉴스에도 만연한 어뷰징의 이면에는 트래픽 욕심이 숨어 있다. 트래픽은 광고 수주와 단가를 좌우한다. 의미 없는 말초적 기사로 얻은 트래픽으로 광고를 따내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가벼워도 너무 가볍다. 언론의 저널리즘은 구정물에 빠졌고 언론사 정체성은 실종됐다. 양질의 기사를 볼 국민의 권리도 뭉개졌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개선과 어뷰징 언론사 제재다.

외신을 다루는 직업 덕분에 다른 나라 포털을 자주 이용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를 초기 화면의 보기 좋은 자리에 배치하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구글이나 야후재팬, 바이두에도 없다. 포털 사업자는 국민의 관심사를 반영한다고 해명하지만 이미 남아 있는 테마는 옐로 저널리즘뿐이다. 폐지를 전제로 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어뷰징 언론사 제재도 강화해야 한다. 네이버는 올해 3월 검색 어뷰징을 이유로 15개 매체와 제휴를 중단했다. 지금도 기준에 따라 퇴출시켜야 한다. 다른 포털도 뜻을 함께해야 한다. 직접 하기 부담스러우면 인터넷자율정책기구에 맡기는 방법도 있다. 중소기업 상생도 중요하지만 어뷰징으로 점점 곪아가는 국민의 뉴스 소비도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