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커뮤니케이션의 미래

형사 가제트는 언제나 특수 장비를 통해 상사에게 지령을 받는다. 지령이 적힌 종이는 가제트가 확인한 후 저절로 불에 타 사라진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서도 명령을 전한 전화기는 항상 자동으로 폭파된다. 첩보 영화에나 주로 등장했던 `자동 소멸 메시지`가 최근 `커뮤니케이션 미래`로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와 스마트 모바일 기기의 확산이 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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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스마트폰은 언제 어디서건 글이나 사진을 올리는 것이 극단적으로 쉬운 환경을 만들었다. 반면 이렇게 쉽게 뱉어진 말과 사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디지털 세상 어딘가에 남아 우리를 괴롭힐 수 있다. 더구나 이런 조각 글이나 사진은 본래 맥락과 분리돼 원래 의도 같은 건 남아 있지도 않는 경우가 많다.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술김에 올린 트윗 하나로 영영 화려한 무대에서 사라지는 일도 드물지 않다. 공인이나 유명인이 아니라 일반인도 철없던 시절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에 올린 글이 두고두고 회자되면서 말 못할 고통을 겪기도 한다. 옛날 같으면 몇몇 지인들 기억 속에나 남았을 일들이 이제는 거대한 디지털 스토리지와 검색에 힘입어 영원히 기억에 남게 된 것이다.

◇부담없는 소통

2011년 스탠포드대학 학부에 다니던 에반 스피겔과 바비 머피는 사진을 보내고 상대방이 확인하면 얼마 후 사진이 저절로 사라지는 `스냅챗`이라는 모바일 앱을 만들었다. 마침 뉴욕 시장을 넘보던 앤서니 위너 민주당 의원이 트위터에 음란 사진을 올린 사실이 알려져 정계를 떠나는 일이 생겼던 때였다. 위너 의원이 스냅챗을 썼다면 그런 곤경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냅챗은 수신자가 화면을 터치하면 사진이 보이고 손을 떼면 지워진다. 스냅챗은 10대를 중심으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고, 현재 하루 1억건 이상의 사진이 공유된다. 페이스북이 `포크`라는 카피캣을 내놓으며 대응해야 할 정도로 인기다.

이같은 인기 비결은 무엇보다 소통의 부담을 확 줄여주었기 때문이다. 재미있고 웃기지만, 그래서 더 민망한 사진을 부담없이 친구들과 주고받는 길을 열어주었다. 홈페이지에서 블로그로, 다시 140자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점점 쉽고 가볍게 글을 올리고 공유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온 온라인 퍼블리싱 추세와도 맞아 떨어진다.

단지 글을 읽고 쓰는 부담만 줄여주는 것이 아니라 민망한 내용이 친하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거나 인터넷 서버 어딘가에 남아 비수가 되어 돌아올 심리적 부담까지 덜어주는 것이다.

미국에선 스냅챗 외에도 암호화된 문자와 사진, 인터넷 전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위커`라는 앱도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다음 모바일 메신저 마이피플에 수신 5초 후 메시지가 사라지는 `5초 메시지` 기능이 도입됐다. 받은 사진이 10초 후 사라지는 `샤틀리`라는 모바일 앱도 `10초 사진관`과 `굴욕전용 메신저`라는 컨셉트로 최근 선보였다. 샤틀리 개발사 티그레이프는 “사진을 친구와 공유하지만 온라인에 흔적을 남기지 않아 사생활 노출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서비스”라며 “사용자의 기발한 이용과 함께 재미있고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로 발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잊혀질 권리` 챙겨라

사라지는 메시지에 대한 관심은 또한 더 이상 개인정보를 스스로 관리할 수 없게 됐다는 현대인의 불안에 힘입은 바 크다. 이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모바일 기기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형태로 기록되고 있다. 저녁 모임 식당을 찾은 기록은 구글이나 네이버 검색창에 남고, 모임에서 친구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은 드롭박스에 자동 업로드되고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올라가며, 식당의 위치는 체크인을 통해 포스퀘어에 남는다. 우리의 행적이 고스란히 디지털 공간에 남고 인터넷 기업들은 이 거대한 데이터를 미세하게 분석해 수익을 얻는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만큼 인터넷 기업은 사용자가 개인정보를 통제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이 복잡해 사용자는 여전히 개인정보 관리에 어려움을 느낀다. 스냅챗 같은 자동 소멸 메시지는 사용자가 손쉽게 자신의 메시지를 통제하는 방법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관련 기술이 산업적으로도 의미를 얻게 될지도 주목된다. `그리픈`이라는 미국 기업은 메시지가 자동으로 사라지게 하는 기술을 기업 보안에 적용하려 하고 있다. 이들이 만든 앱은 메시지를 암호화해 전송하고, 받은 이미지를 캡처하거나 제3자에 전달하는 것을 차단한다.

국내에서도 스누라가 `디지털 소멸 시스템` 특허의 사업화에 나섰다. 생물이 노화하는 것처럼 디지털 콘텐츠에 `노화` 개념을 도입해 일정 시간이나 조건이 되면 인터넷에서 콘텐츠가 자동 소멸하게 한 것이다. 전재호 스누라 대표는 “개인이나 인터넷 기업이 자발적 노화 설정으로 불필요한 데이타를 자동 소멸시킬 수 있다”며 “사생활 침해 예방과 잊혀질 권리에 대한 보호 장치를 확보하고 서버 비용의 획기적 절감 효과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메시지에 `수명`을 부여하는 기술은 역설적으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과거의 아날로그 소통 방식과 비슷하게 만든다. 대화를 나누는 당사자 사이의 맥락을 중심으로 이해되고, 대화가 벌어진 시간과 장소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 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소통 방식과 유사하다. 커뮤니케이션의 미래가 과거의 커뮤니케이션과 만나는 지점이다. 공유와 확산이라는 디지털 시대의 가치가 프라이버시와 개인정보 통제라는 민주사회의 가치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자동 소멸 커뮤니케이션`이 그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전망이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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