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2]
소년은 싸움을 잘했다. 수시로 친구들을 괴롭히는 악동이었지만 주먹 하나로 5학년 때 전교 부회장에 무(無)투표로 당선됐다. 다른 후보자들이 일찌감치 포기했기 때문이다.
한껏 기세가 오른 6학년, 인생에 첫 번째 전환점이 찾아왔다. 새로 부임한 담임교사는 그에게 “작년에 부회장이었다며? 기대할게”라는 첫인사를 건넸다.
그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교사 눈에 들려면 공부를 잘해야 했다. 미친 듯이 시작한 공부는 결국 서울대 치대 입학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처음부터 치대 진학이 목표는 아니었다. 소년은 원래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들고 싶었다. 철학이 1순위였고, 공학이 2순위였다. 철학이 1순위였던 이유는 패러다임을 바꾸려면 `근본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IMF 경제위기를 전후해 닥친 아버지의 사업 실패는 다른 고민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우습게도 전공을 선택한 큰 이유였던 집안 환경이 입학 후 거짓말처럼 나아졌다. 여유가 생긴 청년은 주변을 둘러봤다. 어영부영 공중보건의를 시작했지만 치과의사만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전라남도 한 외딴 섬에 근무하던 청년은 매주 두 시간에 걸쳐 배를 타고 뭍으로 나와 독서모임에 참가했다. 정치·사회 등 여섯 개가 넘는 클럽에서 사람들과 난상토론을 벌이며 갈증을 풀었다.
2010년 어느 날 처음으로 손에 쥐어본 `아이폰4`는 인생의 두 번째 계기가 됐다. 스마트폰은 그가 잠시 잊고 있던 `하늘을 나는 비행기`라는 꿈을 다시 꺼내게 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 등을 거치며 여론 형성과정과 한국사회의 불통을 고민하던 그에게 스마트폰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였다.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사람들의 생각을 직접 듣는 모바일 툴을 만들어보자.”
중학교 시절, 전국대회에서 꼴지를 한 이후 쳐다보지도 않던 프로그래밍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2011년 4월 20일 공중보건의에서 소집해제 되자마자 다음날 바로 법인을 등록했다. 동문회를 중심으로 창업자와 직원을 구했다. `다보트`의 시작이었다. 교사의 한마디에 바로 `전향`했던 화끈했던 기질은 그대로였다.
시작은 야심찼지만 곧 위기가 닥쳤다. 생각과 달리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포털의 풀(투표) 페이지뷰가 100건이라면 실제 투표는 한 번밖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몸으로 부딪히며 배웠다. 청년 벤처사업가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결국 웹이 그를 구원했다. `아프리카TV` 같은 팟캐스트 BJ(Broadcasting Jockey)들에게 다보트 툴이 공급되며 숨통이 트였다. 지상파방송의 시청자 문자투표를 인터넷방송으로 옮긴 것이다.
급한 불을 껐지만 또 다른 문제가 남았다. 월 1000만원 정도 매출로는 회사를 계속 유지하기 힘들다.
지금까지 경험을 밑천으로 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다른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지만 여전히 자금이 고민이다.
창업 2년째를 맞는 그의 아이디어를 지원해 줄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연대보증`이라는 깊은 수렁에 발을 들여놔야 할지도 모른다.
서른 두 살 청년사업가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 스토리를 풀어봤다. 이는 특정인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수많은 `이승건`과 `비바리퍼블리카`가 꿈과 불안을 동시에 안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가고 있다.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1982년생인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모바일투표 시스템 `다보트`를 만든 주인공이다.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공중보건의 시절 스마트폰을 접한 후 IT 업계에 투신했다.
그는 “치과의사 면허를 포기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돌아갈 곳이 있을 것이란 편견 때문에 절실함을 잘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다. 한국의 벤처창업가들이 얼마나 열악한 현실에 처해 있는지 단면을 보여준다.
이 대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창업 환경이 개선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2년 새 창업이 화두가 되며 정책지원이나 자금이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대표는 예비창업자들에게 △노하우 공유 △자금 △경영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본인이 스스로 갖춰야 할 경영능력을 제외하면 노하우나 자금 문제는 국가나 사회 시스템이 뒷받침해야 할 부분이다.
그는 30년 뒤 페이팔, 테슬라모터스, 스페이스X의 창업자 엘론 머스크처럼 인류 생활에 보탬이 되는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섰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우리 사회는 이 서른 두 살 청년사업가의 꿈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까.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