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전성시대`
전자신문이 창간한 1982년. 당시 대학에 첫 발을 내디딘 82학번이 정치, 경제, 사회 곳곳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31년 전 대학 새내기였던 82학번은 이제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 주요 기업 등을 이끌어가는 핵심으로 성장했다.
그동안 각자 맡은 영역에서 묵묵히 일하며 성장을 이끌어 낸 82학번. 이제 고위 공직자, 국회의원, 기업 임원 등이 돼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일에 나서고 있다.
대부분 1963년생인 82학번은 베이비붐(1955~1963년) 세대의 마지막이어서 다른 학번에 비해 동기가 많다. 초중고등학교 내내 콩나물 시루 같은 교실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공부했다. 대학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졸업정원제를 실시하면서 입학정원이 두 배로 늘어나 82학번은 역사상 가장 많은 대학 신입생을 기록했다. 이때 생긴 별명이 `똥파리 학번`이다. 발음이 비슷한 것도 있지만 워낙 많은 인원을 빗대 선배들이 부르던 표현이다.
많은 인원 때문에 82학번은 성장과정에서 동기들과의 경쟁이 체화됐고, 경쟁을 통해 쌓은 탄탄한 경쟁력은 사회에서 큰 힘이 됐다. 사회에 나온 후에는 성장과정의 경쟁자였던 동기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돼 서로 밀고 끌었다.
82학번은 386세대의 핵심 학번으로도 의미가 있다.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에 다니면서 학생운동과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세대로, 1990년대 30대가 된 386세대에서 82학번은 맏형격인 존재다. 82학번 대부분은 군부독재에 맞서 싸우며 사회 변혁을 꿈꿨다. 30대가 된 후에도 새로운 정치 변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정치권에 유독 82학번 출신이 많고 파워를 갖춘 것도 82학번의 학창시절과 성장경험이 단초가 됐다.
82학번 중에서도 주목받는 학과는 단연 서울 법대다. 졸업정원제를 보완해 1순위와 2순위 지망 제도를 갖추면서 성적순으로 학과가 정해졌고, 서울 법대에는 우수한 성적을 받은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82학번 중 사법고시를 통과한 사람이 56%나 될 정도다. 실제로 활동영역을 봐도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 원희룡·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김난도 교수 등 정치권과 학계 유명인사가 포진해 있다.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큰 그림을 그리는 최상목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 판사출신으로 네이버 CEO를 맡고 있는 김상헌 대표 등도 82학번 법대 동기생이다.
82학번의 모습은 전문지로 창간해 IT산업 발전을 이끌며 대중지로 자리 잡은 전자신문의 성장과 닮았다. 1982년, 전자정보통신 산업의 기수를 천명하며 탄생한 전자신문은 미래를 꿰뚫는 콘텐츠 경쟁력과 사회적 영향력으로 사회 여론 주도층을 선도해왔다. IT산업과 미디어 산업의 최첨단을 열어간 전자신문도 이제 뉴스매체를 기반으로 신성장 동력산업을 리드할 사업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또 다른 도전과 혁신에 나서고 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