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금융사에 IT인프라 공짜로 달라는 공기관

일부 공공기관이 주거래 금융사에 정보기술(IT) 인프라를 거의 공짜로 구축해달라고 요구해 말썽이다. 이 요구도 마냥 무시할 수 없는 금융사는 괴롭다.

공기관은 주거래 금융사에게 좋은 고객이다. 돈 씀씀이가 큰데 떼일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기관 편의를 봐달라는 것을 일면 수긍할 수 있다. 직원 대출 혜택과 같은 요구라면 누가 뭐라 할 것인가. IT 기부채납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 이건 아니다.

기부채납이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건물과 토지 같은 민간 사유물을 무상으로 기부를 받는 것을 뜻한다. 그 대가로 기부자에게 운영권이나 다른 수익원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IT 기부 채납을 받은 공기관은 앞으로 IT 신규 투자 관련 권한을 몽땅 금융사에게 주겠다는 것인가.

씁쓸하다. IT를 엄연히 제 돈을 들일 게 아니라 그냥 얻는 덤으로 여기는 우리 사회 단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IT도 신축건물과 다를 바 없다. 새로 쓰겠다면 마땅히 지불해야 할 고정비용이다. IT를 거저 얻겠다는 것은 이렇게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든 업무를 IT로 처리하는 시대를 거스르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공기관도 나름 속사정이 있을 것이다. 무리한 요구를 한 공기관은 주로 지방 이전 대상이다. 정부는 지방 균형 발전 차원에서 정부부처 세종시 이전과 함께 산하 공기관을 여러 지역에 옮긴다. 예산 재분배 과정에서 공기관 이전비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공기관이 IT 비용이라도 줄여보려 민간에 손을 벌린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 해도 이렇게 무리한 요구를, 그것도 IT 인프라나 서비스 업체도 아닌 금융사에 하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IT 기반 창조경제를 만들자는 정부다. 이 슬로건에 앞장서고 솔선수범해야 할 공기관이 바로 IT 가치를 대놓고 무시한다. 가뜩이나 제 값을 받지 못하는 IT 업체들이다. 힘센 금융사로부터, 그것도 공짜 프로젝트에서 제 대가를 받을 릴 없다. 공기관은 IT 비용을 대신 감당한 금융사엔 어떤 특혜를 줄까. 과연 공개적으로 줄까. 투명성 제고를 일차 덕목으로 하는 IT를 둘러싼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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