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예외 규정 마련 아쉬움

“국내 대기업 협력업체로 일 해보면 세계 어떤 기업과도 거래할 수 있다. 온갖 고통을 견디면서 강력한 내성을 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공공연하게 회자되던 중소기업들의 현실을 드러낸 씁쓸한 말이다. `갑을 관계`로 지칭되는 불공정 거래 관행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번 하도급법 개정안은 계약서에 없는 비용 전가, 원사업자가 부담해야 할 민원 처리나 산재 비용 전가 행위 등을 금지했다. 그동안 당사자 간 합의에 따른 것으로 간주하던 내용을 법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다만 시장 변화가 빠른 전자·IT업계 등의 실제 거래 현실을 반영하는데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협력업체가 실시간으로 연구개발(R&D)을 보조해야 하는 경우 등까지 이 법의 적용을 받으면 서류작업 부담이 늘고 개발 시간이 지연될 우려가 있다.

법이 부당 특약으로 간주되는 행위 유형은 △원사업자가 서면에 기재되지 않은 사항을 요구함에 따라 발생된 비용을 수급 사업자에게 부담시키는 약정 △원사업자가 부담하여야 할 민원처리, 산업재해 등 비용을 수급사업자에게 부담시키는 약정 △입찰 내역에 없는 사항을 요구함에 따라 생긴 비용을 수급사업자에게 부담시키는 약정 등이다.

10일 입법예고하는 하도급법 시행령 개정안 역시 하청업체의 권익 보호 강화를 위한 구체적인 절차를 마련했다. 특히 부당 특약 유형까지 명시하고 입증 책임을 원청 업체에 일정 부분 부과해 신고를 간편하게 하고 문제 해결도 신속하게 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여전히 거래 관계에서는 이 법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하도급법 규정 강화를 이유로 중소기업의 거래 자체를 꺼리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거래 관계에서 벌어진 일을 사후 규제하는 법이기 때문에 아예 거래 관계를 성립시키고 말고 하는데 간여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R&D 등에는 예외를 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설된 부당특약 규정에는 서면에 기재되지 않은 사항을 요구함에 따라 발생된 비용을 수급 사업자에게 부담시키는 약정을 금지하고 있는데, 협력 업체에 제품 기술 기준(스펙)을 제시해 R&D를 요구하는 것마저도 규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스펙을 받고 R&D를 해서 제품을 공급하고 이후에 제품이 완성될 때까지 계속 시스템과 연동 테스트 등을 해야 하는데 이 때에도 분쟁이 생길 때를 우려해 대기업이 일일이 비용 지급 계약서를 쓰자고 해 양쪽에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서면으로 계약을 하고 증거를 남기는 게 원칙이기는 하지만 불가피한 경우에는 나중에 보완할 수 있도록 하도급법상 예외 규정 해석을 유연하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도급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예외 규정 마련 아쉬움
하도급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예외 규정 마련 아쉬움

오은지기자 onz@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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