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50>정통부 겹경사 `장, 차관 내부 승진 발탁`

설연휴를 하루 앞둔 2000년 2월 2일 수요일.

김대중 대통령이 지시서한 1호를 모든 국무위원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전자정부 하루속히 구현하라`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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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인터넷 이용자가 1000만명을 넘어섰고, 급속한 지식정보화에 따라 국제사회 구조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민의를 수렴하고 정부 정책도 적극 알리는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으로 전자민주주의 실현에 정부가 앞장서야 합니다. 각 부처가 홈페이지를 적극 활용해 국민이 정부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힘써 주십시오.”

김 대통령이 보낸 이메일에 박태준 국무총리(작고)와 장관들의 답신이 속속 도착했다. 부처마다 나름의 독특한 아이디어가 담겨 있었다.

“각 부처 업무처리에 이메일을 적극 활용하도록 독려하겠습니다.”(국무총리)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각 시도 지사와 산하기관에 이메일을 통해 알렸습니다.”(행정자치부)

“대통령의 편지는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독려장이 될 것입니다.”

“사이버 환경교육원을 개설하겠습니다.”

“집합식 월례조회를 전자우편 조회로 대체하겠습니다.”

“사이버 직거래 쇼핑몰을 개설하겠습니다.”

김 대통령은 답신을 읽으면서 마음이 흐뭇했다고 회고했다.

김 대통령이 자서전에서 밝힌 내용.

“국무위원들의 답신을 천천히 몇 번이나 읽어 보았다. 이메일을 주고받는 나는 행복한 대통령이었다. 반드시 전자왕국을 건설해야겠다고 새삼 다짐했다.”

그해 2월 12일 토요일.

정보통신부에 경사가 겹쳤다. 정통부 차관이 장관으로, 실장이 차관으로 같은 날 내부 승진 발탁됐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날 오전 정통부 장관에 안병엽 정통부 차관(17대 국회의원, 현 KAIST 초빙교수)을, 차관에는 김동선 정통부 기획관리실장(방통위 부위원장 역임, 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이사장)을 각각 승진 임명했다. 이 인사가 발표되자 주말 한산하던 정통부는 잔칫집 분위기로 변했다.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현 전남도지사)은 “이번 인사는 해당 분야의 정통관료가 발탁된 전문성이 가장 강조된 인사이며, 업무 추진능력을 감안했다”고 인선 기준을 밝혔다.

박 대변인은 이어 “신임 안 장관은 경제기획원에서 예산 분야 등 보직을 두루 거쳤고 지난 1996년 정보화기획실 신설시 정통부로 옮겨와 정보통신 업무를 관장해왔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이 인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정통관료의 장관 발탁이었다. 그동안 김대중정부는 정통부 장관에 민간 CEO 출신의 외부 인사를 계속 임명했다. 대우전자 회장 출신의 배순훈 장관(현 S&T중공업 회장)에 이어 삼성SDS 사장을 지낸 남궁석 장관(작고, 새천년민주당 정책위 의장, 국회 사무총장 역임)이 그 뒤를 이어 받았다. 두 번째는 장관과 차관을 같은 날 동시에 내부 승진시킨 일이었다. 이런 일은 극히 드물었다.

안병엽 장관은 고려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11회)에 합격, 경제기획원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경제기획원 감사관과 공정위 독점관리국장. 재경원 국민생활국장 등을 지내면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다.

안 장관은 1996년 7월 5일 신설한 정보통신부 정보화기획실 초대 실장으로 발탁됐고 김대중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분과 전문위원으로 파견 나가 일했다. 정보통신부 복귀 후 1998년 3월 15일 정보통신정책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외유내강형으로 합리적이고 인화를 중시했다. 그는 각종 업무를 추진하면서 가장 핵심적인 일은 직접 처리했다. 아랫사람에게 맡길 일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했다. 소탈한 성품이지만 조직 장악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정보화기획관리실장과 정보통신정책실장을 맡으면서 정보화에 필요한 각종 제도와 법을 정비했다. 차관 재임 시 디지털 재앙으로 불리는 밀레니엄 버그를 막는 Y2K정부종합상황실장을 맡아 Y2K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했다.

그는 초대 정통부 정보화기획실장 권유를 받고 처음엔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인들과 거취를 상의해 두 번째 승낙했다고 밝혔다.

안 장관의 회고.

“당시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국회 전문위원 등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처음 정보화기획실장 이야기가 있었는데 `안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그런 권유를 받았어요. 외부 지인들과 거취문제를 상의했습니다. 언론계 친구들은 `무조건 가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과거 `경제개발 5개년계획 수립 등의 경험에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하면 국가정보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결정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실장을 거쳐 차관 재임 1년 8개월 만에 장관으로 직행했기 때문이다.

안병엽 장관은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현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장관 내정을 통보받았다.

안 장관의 회고.

“남궁 장관이 그해 4·13총선에 나가기 위해 사의를 표명한 후 한광옥 비서실장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한 실장은 `후임 장관으로 내정됐다. 축하한다`고 말했습니다.”

한 실장은 후임 차관 인선에 관해 안 장관의 의견을 물었다.

“혹시 후임 차관 인선과 관련해 생각한 사람이 있습니까.”

“내부 승진이 좋겠습니다. 부내에서는 김동선 기획관리실장이 적임자입니다.”

“그래요. 잘 알겠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난지 얼마 후 정통부 김동선 기획관리실장도 한광옥 비서실장의 전화를 받았다. 두 사람은 전주북중학교 동기였다. 두 사람은 친구라도 공사(公私)는 엄격히 구별했다.

김동선 차관의 회고.

“한 실장이 전화를 해 `정통부 차관으로 내정됐으니 그리 알라`고 하더군요. 일부에서는 제가 친구 덕으로 차관이 된 게 아닌가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당시 정통부에서 기획관리실장으로 2년여 일했고 제가 가장 고참이었습니다.”

김동선 차관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후 행정고시 10회로 체신부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전북체신청장과 정보통신공무원교육원장, 우정국장, 기획관리실장을 역임했다. 고시로 보면 안병엽 장관보다 1기 선배였다. 그는 행정경험이 풍부한 정통부의 터줏대감 격이었다.

그는 호방한 성격에 대인관계 폭이 넓었다. 보스 기질과 업무 추진력이 강해 직원들은 그를 `맏형`으로 불렀다. 호불호가 분명하고 자기주장이 강해 간혹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우정국장 재임 시 주민등록초본 등 600여종의 민원서류를 우편으로 발급받는 민원우편제도와 각 지역의 명산품을 우편으로 구입하는 우편주문판매제도 등 우체국 혁신에 앞장섰다. 특히 우편업무의 자동화·전산화 종합계획 수립과 우편집중국망 건설을 추진했다.

기획관리실장 때는 우정사업 혁신을 위한 `오프 2001운동` 추진단장을 맡아 우정사업에 경영기법과 책임경영평가, 인센티브제를 도입해 만년 적자를 면치 못했던 우정사업을 115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테니스·탁구 실력도 수준급이다.

그해 2월 14일 월요일.

김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청와대에서 새로 임명된 안병엽 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김 대통령은 안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그동안 차관으로 일해 온 만큼 추진하던 각종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해 달라”면서 “특히 IMT2000 사업자 선정을 잘 마무리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 대통령은 “과거 정부에서 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문제가 많았다”며 “이번에는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주문했다.

안 장관은 임명장을 받고 정통부로 돌아와 정통부 15층 대회의실에서 취임식을 갖고 업무를 시작했다.

이튿날인 2월 15일 화요일.

박태준 국무총리는 이날 총리실에서 김동선 차관에게 임명장을 주었다. 이날 임명장을 받는 사람은 김 차관뿐이었다. 박 총리는 일정이 바빴다. 당초 약속했던 시간에 국무총리실로 갔으나 박 총리는 외부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한참 기다리자 박 총리가 바쁘게 집무실로 들어왔다.

김 차관의 회고.

“박 총리는 무척 바빴어요. 외부에서 들어오자 곧장 임명장을 수여하더군요. 박 총리는 `열심히 일해 달라`고 당부하셨어요. 임명장 주고 다른 일정이 잡혀 있어서 국무총리와 차도 한 잔 마시지 못하고 곧장 청사로 돌아왔습니다.”

그해 2월 24일.

정부는 이날 정보통신부 기획관리실장에 김창곤 정통부 정보통신정책국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디지털케이블연구원장)을 임명했다. 김 국장은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으며 기술고시 15회로 정보통신부 기술심의관, 전파방송관리국장 등을 지냈다.

안 장관의 증언.

“김 실장은 기술고시 출신이지만 업무 추진력이니 기획력이 뛰어났습니다. 처음부터 김 실장은 실장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해 3월 3일.

정통부는 후속인사로 공석 중인 정보통신정책국장에 손홍(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전파방송관리국장에 황중연(우정사업본부장, 한국정보보호원장 역임, 현 개인정보보협회 부회장), 우정국장에 박승규씨(한국인터넷진흥원장 역임, 현 정보통신기능대학장)를 각각 발령했다.

2000년 2월과 3월 정통부는 내부 승진인사로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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