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유럽 일부 국가에 여성의 왕위계승을 인정하지 않는 `살릭 법(salic law)`이 있었다. 프랑스와 독일 역사에 단 한 명의 여왕도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가 이 법 때문이다. 반면에 여성 지도자를 받아 들였던 스페인이나 영국은 유독 여왕 재임기에 큰 성과를 이뤘다.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은 스페인을 통일하고 신대륙을 발견한 주역이었고, 영국 엘리자베스 1세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당대 최고의 지도자였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를 빼놓고는 여성 지도자에게 상당히 관대했고, 그들이 이룬 업적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신라 선덕여왕이다. 오늘날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여성 지도자에 대한 이 같은 인식과 적지 않은 성과 덕분이다.
대한민국이 국제무대에서 제법 큰 위상을 차지할 수 있는 이유 역시, 여성의 활약이 큰 바탕이 됐다. 여자 골프는 이미 세계를 주름잡고 있고, 한국의 걸 그룹은 K팝 전도사로서 세계 음악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도 여성의 사회참여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20대 여성의 사회 참여가 남성을 추월했다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여기에 정치 선진국인 미국에 앞서 여성 대통령까지 등장한 우리나라는 이미 여성 파워가 힘을 발휘하며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로 `대한민국 여성의 힘`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가운데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가 어느덧 13회째를 맞아 지난 27일 개막했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미래 글로벌 여성인재 양성을 위한 한민족 여성의 역할`로 여성인력 창출에 힘을 쏟고 있는 새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에 잘 부합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여성 참여는 아직 미미하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 ICT 전문가 및 기술직 종사자의 여성인력 비중은 16%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기 및 전자기기 설치 인력과 영상 및 통신장비 관련 현장직을 제외하면 약 13%에 불과하다. 이는 OECD 평균인 18%에 비해 낮은 수치다.
오늘날 ICT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산업분야를 찾기 힘들 정도로 그 중요성과 비중이 나날이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참여율이 저조한 까닭은 무엇일까.
ICT 기업은 벤처와 중소기업이 대다수기 때문에 출산과 육아 문제로 노동의 안정성과 복지 등을 더 고려하는 여성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어려운 때가 많다. 여성들은 ICT 기업의 영세한 환경을 꺼리게 된다. 이 같은 구조가 여성인재의 진출을 저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빠르게 급변하는 ICT시장의 특성도 작용하는 것 같다. 남성에 비해 정보수집과 네트워크 형성이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여성들이 ICT 속도감을 따라가기가 어려워 꺼리는 것일 수도 있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는 구글에서 페이스북으로 영입된 지 1년 반 만에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켰다. 여성 특유의 감성과 창의적 감각을 통해 글로벌 ICT 기업의 대표 여성 임원이 됐고 미국 ICT산업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변화무쌍한 ICT시장에서 `IT강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샌드버그와 같은 여성 인력의 양성과 유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 이러한 변화와 융합은 페이스북을 뛰어넘는 대한민국 대표 ICT기업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민족 여성들의 지혜와 경험을 하나로 모으는 이번 행사가 모쪼록 우리나라 ICT 분야 여성인재 양성에 자양분이 돼 세계 각국에서 `한민족 여성의 힘`을 인정받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기대한다.
김현주 IT여성기업인협회장 khj@sdinf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