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등을 제작해 방송사에 공급하는 외주제작사는 `을` 중의 `을`로 통한다. 열악한 제작 환경을 접어두더라도 제작비까지 떼이는 일도 있다. 오죽했으면 “다른 업종처럼 `을`이라도 돼 봤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올까.
문화체육관광부가 30일 `방송프로그램 제작, 방송 출연 표준계약서`를 발표했다. 저작권 상호 인정, 이용 기간과 수익 배분 명시 등을 담았다. 이렇게 기본적인 계약관계조차 그간 방송가엔 정착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외주제작사가 얼마나 방송사 횡포에 시달리는지 짐작하게 한다.
방송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외주제작 시장 불합리를 개선하자는 표준계약서다.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지 3년여 만에 나왔다. 외주제작사의 `최소한의 권리`를 담았다. 첫걸음을 뗐을 뿐이다. 갈 길은 아직 멀다. 표준계약서는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 방송사가 지키지 않는다고 곧바로 법적 책임을 지는 게 아니다. 민간 계약을 법규로 일일이 정할 수 없겠지만 강제성이 없다보니 자칫 형식적인 시늉에 그칠 수 있다.
저작권 상호 인정만 해도 방송가 현실을 고려할 때 감히 제 권리를 요구할 제작사가 있을지 의문이다. 출판, 영화 등 다른 콘텐츠산업과 비교해 우리 방송 콘텐츠산업엔 저작권 개념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방송사가 되레 저작권을 계약 협상에 악용할 여지도 있다. 이런 횡포를 제작사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할 수 있지만 이 또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일이다. 표준계약서 제정은 불합리한 관행으로 왜곡된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관계를 앞으로 고쳐나가자는 선언으로 봐야 한다. 세부 내용을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모두 적극적으로 채워나가야 한다. 외주제작사는 스스로 정당한 권리를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권리는 쟁취하는 것인지 그냥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방송사가 바뀌어야 한다. 디지털 매체의 잇따른 등장으로 방송사 경영 환경은 팍팍해졌다. 앞으로 더할 것이다. 외주제작사를 동반자로 여기지 않으면 결코 넘을 수 없는 거친 파도가 밀려온다. 표준계약서를 그 경고장으로 읽지 못하면 거기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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