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는 방학이 있어 참으로 즐거운 직업이다. 방학(放學)은 방목(放牧) 학습(學習) 기간이다.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잡아서 흠뻑 빠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바로 방학이다. 이 기간 동안 두꺼운 책 몇 권을 독파하고 그 책의 의도가 나에게 던져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또 오곡백과가 무르익어가는 가을날 멋진 작품을 구상하는 시간의 준비기간으로 삼으려 한다.
작품을 잉태하는 뜨거운 여름날, 나는 어디에선가 책을 읽고 책을 쓰고 있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아픔이 무엇인지, 우리 모두가 함께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 너무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떠내려가는 현대인들의 상흔을 어루만질 수 있는, 눈 먼 시대에 눈을 뜨는 방법, 귀 먹은 시대 귀를 열고 경청하는 방법을 책에서 찾아보려 한다.
너무 많은 이미지를 본 눈은 이미지를 해독할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멀어져 가고, 너무 많은 소음에 시달린 귀는 이제 소리다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귀머거리가 돼가고 있다. 진정 봐야 될 것을 보지 못하는 눈과 진정 들어야 할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를 치유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안 보고 안 듣는 것이다. 눈을 감고 귀를 막을 때 더 잘 보이고 더 잘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틈만 나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연결돼 정보를 주고받고 있지만 정말 의미 있는 소통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틈만 나면 웹 검색을 하면서도 사색(思索)하는 여유를 잃어버려 얼굴이 사색(死色)이 되고, 진중하게 사고(思考)하지 않아서 심각한 사고(事故)가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나부터라도 과잉 연결된 세상, 디지털 광풍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인간적 교감이 이뤄지는 아날로그 공간으로 돌아가 보려고 한다.
접촉이 없는 접속이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그동안 소홀했던 사람 냄새 나는 삶의 무대로 돌아가 이런 저런 단상(斷想)을 잡아보려고 한다. 깊이 사유하고 폭넓게 사고하는 습관을 잃어버리게 만든 장본인이 SNS라고 생각한다. 버스를 타든, 지하철을 타든 책을 읽는 사람보다 각 자의 스마트폰에서 뭔가를 열심히 검색하고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주변의 소중한 사람, 일상의 행복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왜 무엇을 위해서 소통하고 어디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지를 빠르게 돌아가는 SNS의 세계에서 벗어나봐야 참다운 나, 행복한 삶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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