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칼럼]소재산업, 대기업 역할이 중요하다

장마가 시작된 지난달 하순부터 관가는 `예산 투쟁`의 계절로 들어갔다. 올해는 경기 침체로 세입이 부족하고 재정이 어려워 예산을 신청하는 부처나 심의하는 부처 모두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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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소재·부품 예산의 중요성은 총론적으로는 모두 공감하지만 주목받을 만한 정치적 속성이 약한 탓인지 예산을 확보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간 대기업 주도의 전자·자동차·조선 등 장치산업으로 고도 경제성장을 이뤘던 우리가 제조업 기반 선진 강국으로 재도약하려면 소재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산업 경쟁력의 원천이 완제품, 부품에서 소재로 이동하면서 소재가 전체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비약적인 성장에도 부품과 달리 소재 분야는 경쟁력이 취약하다. 우리나라는 범용 소재에서는 세계 수준 경쟁력을 갖췄으나 핵심 소재는 선진국의 70% 수준에 불과하다.

핵심 수출품목인 반도체·LCD 등 IT 분야는 광학필름·액정 등 핵심 소재를 거의 전적으로 일본에 의존한다. 원천 기술 부족으로 대일 무역적자의 47%가 소재 분야에서 발생한다.

부품과 완제품 경쟁력을 좌우하는 원천 핵심 소재는 개발하기도 어렵거니와 사업화까지 많은 시간과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전형적인 고위험(high risk), 고수익(high return) 분야다.

기능성 섬유 소재의 대명사인 고어텍스는 글로벌 기업 듀폰이 1970년부터 19년간 1조원 이상 투자해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듀폰은 2010년 매출 30억달러로 세계 시장의 90%를 차지했다.

소재는 공공재적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개발 초기부터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과 지속적인 지원이 요구된다. 우리나라는 1990년 포스코에 혁신적인 제철 공법 중 하나인 파이넥스(Finex) 제철 기술 개발을 지원, 원가절감은 물론이고 환경문제 해결에 기여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기업이 최고 수준의 IT·자동차 등 수요산업의 강점을 보유한 지금이 소재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입을 모은다. 핵심 소재를 석권한 일본도 1980년대 이후 자국 전자산업 발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사업영역을 완제품에서 전자소재 분야로 특화시켜 독보적인 시장점유율을 확보했다.

우리도 소재에 특화된 기술개발 전략이 필요하다. 소재처럼 대규모 자금투입이 필요한 고위험 분야는 대기업 수요연계가 필수다. 대기업의 정부 연구개발(R&D)사업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글로벌 시장을 이끌 원천 기술을 개발하는 `선도자(First Mover)` 전략을 이행하려면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이 손잡고 가야 한다.

정부 R&D로 중소·중견기업이 대기업과 공동 연구를 수행하면 납품처 확보와 사업화를 위한 성능평가 등이 용이해진다. 대기업 개발 기술의 중소중견기업 전수·공유로 동반성장 기틀을 확고히 할 수 있다.

정부는 2017년 중소·중견기업 R&D 지원 비중을 50%로 높인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향후 예산 심의 과정에서 소재 분야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획일적인 잣대를 적용한다면 큰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대나무는 처음 심은 후 5년 정도는 뿌리를 깊게 내리느라 키가 자라지 않는다. 산업이 고도화할수록 기본기를 다져야 한다. 우리 제조업이 영속하려면 제조업의 뿌리인 소재를 튼튼히 해야 한다.

완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한 국내 대기업이 이제는 원천 소재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아울러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의 균형 있는 성장을 통해 건전한 생태계가 조성돼야 글로벌 시장 선도가 가능할 것이다.

최태현 산업통상자원부 소재부품산업정책관 thchoi@motie.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