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주파수 5개년 계획을 세우자

사실상 안(案)이 없었다. 정부가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확정한 새 주파수 할당안을 보면서 답답한 사람은 한 두 명이 아닐 것이다. 미래부는 논란이 됐던 KT 인접 대역을 이번 할당안에 포함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를 끝내 결정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론을 슬그머니 시장에 넘겼다. 미래부가 확정한 4안은 극과극의 두 개안을 돈으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머니 게임`은 다시 주파수 파편화를 불러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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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어정쩡한 결정은 불과 3개월 만에 세 개의 안이 다섯 개로 늘어날 때부터 예고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로 좁혀지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다. 내부 회의에서는 여덟 개까지 거론됐다고 한다. 일반 기업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안이 세 개 이상이라는 것은 안이 없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CEO에게 보고조차 못 한다.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왜 이렇게 갈팡질팡 했을까. 일각에서는 전 정부 방송통신위원회의 실수를 현 정부의 미래부가 덤터기를 썼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KT에 할당한 900㎒의 잡음 문제가 `원죄`가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처럼 투명해진 세상에 정부가 과연 KT의 눈치를 보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그러면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바로 구조적인 문제였다. 애당초 부족하고 잘게 쪼개진 주파수 자원으로는 어떤 식으로 결론을 내더라도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미래부로서는 외통수였다. 특혜 시비를 차단하려면 아예 KT 인접대역을 할당안에서 빼거나 이번처럼 시장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주파수 파동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주파수 정책이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주먹구구식이었는지 맨눈으로 확인하게 된 것이 본질이다. 어느 나라보다 트래픽이 급증하는 나라에서 체계적인 준비가 없었다는 것이 역설적이다. 우리보다 트래픽이 한참 적은 유럽 주요국이 처음부터 롱텀에벌루션(LTE) 주파수를 광대역으로 배분한 것과 대비된다.

미래부는 이번 주파수 할당이 끝나면 또 한 차례 전쟁을 치러야 한다. 바로 디지털방송 전환으로 유휴대역으로 남은 700㎒의 용도를 결정하는 문제다. 이번에는 정치력이 막강한 거대 방송사까지 가세한다. 통신 3사에도 휘둘린 미래부가 과연 무게 중심을 잡을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가뜩이나 주파수 추진체계는 방통위, 국무총리실로 삼원화 됐다. 급증하는 수요에도 통신용 주파수가 다시 파편화되거나,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은 왜 주파수를 둘러싸고 잡음이 적을까. 이들 국가는 일찌감치 장기 계획을 수립했다. 미국은 이미 2009년 700㎒를 통신용과 공공용으로 정했다. EU는 디지털 방송전환 유휴대역인 800㎒ 가운데 72㎒를 모바일 광대역 네트워크로 사용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광대역으로 배분할 수 있는 여유도 이런 장기 플랜에서 비롯됐다.

불투명한 정책은 주파수 할당 때마다 사생결단식 싸움을 불러온다. 할당 계획이 예측 가능하다면, 통신사도 이전투구보다 스스로 장기 레이스를 준비할 것이다. 더 이상 언 발에 오줌누기식으로 트래픽 폭증시대를 대비할 수 없다. 700㎒ 용도 결정을 앞두고, 우리도 이젠 긴 호흡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거시경제처럼 주파수도 5개년 계획을 수립할 때가 됐다.


장지영 ICT방송산업부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