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소프트웨어(SW) 유지보수 요율을 단계별로 상향 조정하고 SW 분리발주를 확대하기로 했다. 그동안 무상 유지보수로 여겨졌던 항목들을 유상으로 전환했다.

SW업계는 이번 정부 대책은 그 어느 해보다 현실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책발표에 참여한 미래창조과학부도 기획재정부와 예산 협의가 끝난 상태라며 SW 유지보수 요율 현실화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향후 이번 정책이 시장에서도 효과를 거두기 위해 발주기관의 마인드 제고와 SW 업계 스스로의 자정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SW유지보수 현실화는 업계 10년 숙원과제
국산 SW 유지보수 요율 현실화는 지난 10년 동안 SW업계 숙원 과제다. 오라클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외산 SW가 22%의 유지보수 요율을 적용하는 동안 국산 SW는 8%에 그쳤다. IT서비스기업 통해 공급한 SW업체는 이 보다 더 심각한 2~3%를 유지보수 비용으로 받는다. 외산 SW는 유상으로 제공하는 유지관리 업무가 국산 SW 기업에게는 무상인 것도 문제였다.
국산 SW의 유지보수 비율이 외산에 비해 턱없이 낮거나 일부 무상 유지관리로 인정하는 이유는 △SW 유지보수에 대한 발주기관 인식 부족 △부족한 정보화 예산과 비효율적인 운영 △SW업계의 노력 부족 등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SW 유지보수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다수 공공기관은 외산 SW는 독점적인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어 울며 겨자 먹기로 높은 유지보수 요율을 적용하지만, 국산 SW는 조금이라도 유지보수 요율이 높으면 다른 제품으로 교체한다. 국산 SW에 대한 제대로 된 유지보수 비용을 지불하고 그에 맞는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없다. 외산 SW가 무조건 좋다는 잘못된 인식도 한 몫한다.
부족한 정보화 예산도 국산 SW 유지보수 요율을 낮춘 원인이다. 지난 정부들어 사업 단위당 정보화 예산이 크게 줄어든 데다, 현 정부들어 복지 예산 마련으로 정보화 예산이 대폭 감소했다. 공공기관은 정보시스템 운영 효율화보다 유지보수 요율을 낮추는 방향으로 운영비용을 절감했다. 한정된 정보화 예산의 비효율적 운영도 문제다. 공공기관 한 관계자는 “기관장이 교체되면 생색내기 위한 정보화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러한 사업과 중복 투자 사업을 사전에 파악해 이를 유지보수 예산으로 활용하면 요율을 높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SW업계도 문제가 있다. 적정한 유지보수 요율을 적용하기 위해 명확한 원가공개를 해야 하는데, 공개하는 기업이 없다.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원가공개는 하지 않은 채, 외산 SW와 비교해 무조건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SW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10년 동안 유지보수 요율 현실화를 요구해왔지만, 실제 업계 스스로 얼마의 유지보수 요율을 적용해야 하는지를 조사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SW기업이 자신의 개발 원가를 공개하기 꺼리기 때문이다. SW 분리발주가 일부에만 적용한 것도 SW 유지보수 요율을 낮게 한 배경이다.
◇공공기관장의 정보화 예산 확보 의지가 관건
SW 유지보수 요율을 2014년까지 평균 10% 수준, 2017년까지 15%로 끌어올리겠다는 정부 정책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선행돼야 할 과제가 있다. 우선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의 적극적인 협력을 이끌어 내야 한다.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이번 대책 발표는 이미 기재부와 협의를 완료한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2014년부터 유지보수 요율을 평균 10%로 올리는 예산은 증액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공공기관의 기관장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정보화 예산을 추가로 확보하느냐이다.
SW 유지보수 요율 현실화 기준인 `SW 유지보수 요율 등급제`도 수정, 보완해야 한다. 안전행정부는 시스템 중요도와 기술 난이도에 따라 유지보수 요율을 차등 적용하는 유지보수 등급제를 마련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등급제가 외산 SW에게만 혜택을 주는 제도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한다. 핵심 시스템에 사용되는 전사자원관리(ERP),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등의 SW는 대부분 외산이다. 또 시스템 중요도와 기술 난이도를 판단할 기준도 모호하다. 어떤 기관에는 핵심 SW이지만 또 다른 기관에는 비핵심 SW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SW 기업 간의 과당 경쟁도 지양해야 한다. 일부 SW는 공급업체가 많아 과당경쟁으로 이어진다. 사업 수주를 위해 출혈경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SW 공급가격은 물론, 유지보수 비용도 인하한다. 저가의 SW 가격에 낮은 유지보수 요율을 적용, 생존 자체가 어려워지는 사례도 있다.
효율적인 SW 분리발주가 이뤄지려면 공공기관의 역량이 강화돼야 한다. 현재 상당수 공공기관이 SW 분리발주 역량이 없다보니 여전히 시스템통합(SI) 사업자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SW 분리발주를 했음에도 불구, SW가 SI업체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원인이다.
◇“이번 대책은 그 어느 때보다 현실성 높아”
SW업계는 이번 SW 유지보수 요율 현실화 대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무엇보다 예산을 확보, 2014년부터 10% 수준으로 끌어 올린다는 것에 만족하는 분위기다. 한 SW업체 대표는 “이번 정책은 그 어느 때보다 현실성이 높다”며 “기획재정부가 참여해 예산 증액을 약속한 것이어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유상 SW 유지보수 범위와 분리발주 확대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유지보수 비용을 제대로 받으면 인재 양성과 성능 개선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또 다른 SW업체 대표는 “좋은 인재를 양성하고 R&D를 강화하면 그만큼 제품 질도 좋아질 수 있다”며 “외산 SW와 비교해 충분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정책이 시장에서 가시적인 효과를 볼 수 있도록 정부가 끝까지 관심을 가져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SW업체 대표는 “상당수 많은 정책들이 발표 당시에는 장밋빛을 제시하지만, 실제 시장에 적용되면 비현실적인 경우가 많았다”며 “정책 발표만으로 끝내지 말고, 시장에 적용한 후 계속해서 수정 보완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SW업계 스스로 자정 노력을 하겠다는 다짐도 잇따랐다. 제대로 된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유지보수 비용을 효율화하기 위해 서비스준수협약(SLA)을 체결, 제품 하자가 발생하면 철저하게 불이익도 받겠다는 생각이다.
한편 한국SW산업협회 등 SW 관련 10개 협회와 단체는 정부 대책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