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 기반이 해외로 옮겨 가고 있지만, 한국에서 연구개발(R&D)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기업들도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개발 프로세스가 필요해진 셈이죠. 한국 지사의 역할이 커진 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윤덕권 한국애질런트 사장(54)은 국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키워드로 변화를 제시했다. 애질런트에서 20년 가까이 일했지만, 한국 시장의 역동성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예전에는 고성능 기술을 미리 개발해놓고 한국 기업 수준에 맞춰 솔루션을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 IT산업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요구하는 솔루션을 맞추기 버거울 정도예요.”
글로벌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애질런트는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 상반기 실적 목표도 무난하게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 시장이 꾸준한 상승 곡선을 그린 덕분이다.
그러나 향후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한국애질런트가 새로운 먹거리 발굴에 안간힘을 쓰는 이유다. 한국애질런트는 스마트폰을 이을 주자로 자동차 전장과 항공우주 등 정부 연구개발(R&D) 분야를 꼽았다. 자동차는 이미 기계 산업이라기보다는 전자 산업에 가까워졌다. 자동차 부품이 전장화될 수록 계측기의 역할은 중요해진다.
“우리나라는 주요 전장 부품을 수입해 쓰고 있습니다. 애질런트 솔루션이 자동차 전장부품 국산화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북한 리스크가 커지면서 항공우주과학 등 정부 R&D 시장도 커지고 있다. 방위 산업에 쓰이는 고주파 등은 애질런트가 강점을 지닌 분야다. 방위 산업용 부품 국산화 움직임이 활발해지면, 큰 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윤 사장이 CEO로 부임한 후 한국애질런트는 태스크포스(TF)를 유례없이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차세대 기술 개발 조직 전체의 관심도가 높아진 셈이다. TF에서 나온 전략을 정교하게 검토해 사업이 구체화되면 팀으로 격상한다.
윤 사장은 한국 시장에서 애질런트의 이미지도 바꾸고 있다. 과거 애질런트는 고가 장비만 파는 회사로 인식됐다. R&D 등에 쓰이는 고부가 제품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R&D 장비만 내놓았지만, 지금은 연구소용 장비와 제조 현장용 장비를 따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국내 제조 업체들이 생산 노하우가 쌓이면서 정교한 수준으로 장비를 선정하고 있기 때문이죠. 지금 우리에게 품질과 가격 어느 한쪽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