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거래, 글로벌 시장서 해법을 찾다]<2>유럽 전력의 박애주의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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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전력 수요·공급 사정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해진 생산량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는 국가 전체 수요를 감당해야 하는데다 매년 반복되는 겨울철 전력피크 문제는 늘 찾아오는 골칫거리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전력 분야 판매시장의 점진적 개방으로 이 같은 문제의 해결을 자신했다.

[전력거래, 글로벌 시장서 해법을 찾다]<2>유럽 전력의 박애주의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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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전력 생산량은 시간당 6만㎿이지만 겨울철에는 최대 시간당 10㎿ 이상을 소비하기도 한다. 유럽 전력 시장 단일화 정책에 따라 겨울철 피크 시에는 전력을 수입해 이를 늘어난 수요에 대비한다. 아름다운 조명이 어울어진 프랑스 파리 시내 야경 모습.
[전력거래, 글로벌 시장서 해법을 찾다]<2>유럽 전력의 박애주의 `프랑스`

프랑스는 1994년 유럽연합(EU) 출범과 함께 유럽위원회(EC)에서 회원국(당시 27개국) 시장 단일화를 목표로 경쟁체제를 도입해 전력 판매시장을 발전시켜왔다. 전력 발전 분야는 규제를 강화하고 판매 분야는 안정적 공급이 보장된 민간기업 간 경쟁을 부추겨 전력 품질은 물론이고 에너지 안보까지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전력판매 개방 정책은 지금도 진행 중

프랑스의 전력시장 개방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점진적 시장 개방으로 시행착오를 거치고 관련 법과 제도를 개선해 유럽 내 모델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프랑스 전력 시장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영기업인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설립돼 발전부터 공급에 이르기까지 전력시장 전체를 독점해왔다. 하지만 EU의 시장 단일화 정책에 따라 유럽위원회(EC)는 1996년부터 2009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에너지산업에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법·제도(Energy Package)를 제정, 발표했다.

이후 프랑스 정부는 2007년 EU 지침에 따라 판매시장 문호를 완전히 열었다. 이때부터 프랑스 민간 판매회사인 ENI, GDF수에즈 등 EDF의 경쟁사가 생겨나면서 가격을 정부가 정하는 규제시장과 민간기업 중심의 자율시장으로 양분됐다. 결국 국영기업인 EDF와 EDF로부터 전력을 공급받는 민간기업 간 경쟁이 시작됐다. 하지만 민간 판매업체는 발전소를 보유한 EDF만큼 경쟁력있는 가격을 확보할 수 없었다. 민간 기업의 판매시장 점유율은 10%에도 못 미쳤다.

프랑스 정부는 또 한 번의 제도 개선을 단행한다. 2011년 소비자 선택권 확대와 시장 활성화를 위해 EDF에서 생산하는 원자력 발전량의 25%(100TWh)를 다른 판매사에 의무적으로 공급토록 하는 법(NOME)을 통과시켰다. 대규모 소비자에 EDF와 다른 판매사 간 유효한 경쟁체계를 구축하게 된 셈이다. 이에 따라 2011년도 민간기업 자율시장으로 옮겨간 소비층은 16%까지 증가했다고 프랑스 정부는 설명했다.

현재 프랑스 전력 시장에서 대부분 가정에 속하는 36㎾h 미만 고객은 `블루` 요금제를 사용한다.

이들은 2800만 수용가로 정부의 규제 요금과 민간 기업이 정한 요금제 중에서 선택하고 필요에 따라 판매회사를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다.

반면에 사용량이 많은 상업시설 등 `옐로우(36~250㎾h)` 고객과 대규모 전력을 사용하는 `그린(250㎾h 이상)` 고객은 한 번 정한 공급사를 쉽게 바꿀 수 없게 했다. 발전소의 한정된 생산량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는 규제다.

저압 고객 위주로 개방을 실시하면서 산업계 등 고압 시장은 규제화한 개방정책을 펼친 것이다. 이 결과 현재 EDF 시장점유율은 블루 90%, 엘로우·그린 60%에 달한다. 과거와 비교해 민간 기업 점유율은 크게 늘지 않았지만 점차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판은 정부가 만들고 시장은 자율에 맡긴다

2015년 이후 프랑스 전력 판매 시장은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겪게 될 전망이다. 그동안 시행돼 온 산업용 규제 요금제(옐로·그린)가 오는 2015년 12월 31일부로 종료된다.

EDF의 발전 공급선이 프랑스 외에 다른 국가로 보다 자유롭게 된다. 이 때문에 민간 기업의 전력공급량과 가격 경쟁력이 향상돼 EDF와 동일한 조건에서 판매 경쟁이 예상된다.

여기에 프랑스 정부는 노후 원자력 에너지 규제 접근(ARENH) 가격정책을 추진할 예정이다. ARENH으로 정부의 규제 요금제와 민간 주도 자율요금제가 비슷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ARENH 가격은 ㎿h당 40~42유로 선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과거 ㎿h당 55유로에 비하면 경쟁력이 대폭 향상된 것이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70% 이상 자율 시장으로 바뀔 것을 기대하고 있다.

르꼭 띠보 레네뀌젤 프랑스 생태에너지부 총국장은 “규제를 철폐하면 공급자 간 임의로 가격이 책정될 여지가 있는데다 공급자가 발전소를 보호하지 못한 사례가 많아 안정적 공급이 어려워 점진적 개방 정책을 펼쳐왔다”며 “일정 수준 이상 공급이 보장된 판매 기업은 시장원칙에 맞는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해지고 정부 규제는 판매 분야에서 발전 분야로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엘로우와 그린 요금제 폐지로 2016년이면 전기요금은 시장원리에 맡겨질 예정이다. 프랑스 정부는 안정적 전력 공급이 보장된 민간 기업에 한에서 송전비용 역시 EDF와 동일하게 책정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운영 마진 등 마케팅 비용 등으로 시장 가격은 형성될 전망이다.

◇가격보다 에너지 안보에 초점

프랑스 전력시장 개방의 핵심은 에너지 안보다.

2016년부터 전력 판매시장이 완전 자율경쟁으로 바뀔 예정인 가운데 프랑스 정부는 판매보다는 발전 분야 규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 민간 전력 판매 기업은 일정 수준 이상 전력을 확보해 정부로부터 보장인증을 받아야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이는 피크 시 실시간 전력 공급 능력을 사전에 확보해 안정적 시장을 조성하겠다는 의지다.

실제로 프랑스는 겨울철 오후 6시 기준으로 온도가 1도 떨어지면 230㎿h의 전기소비가 급증한다. 이는 같은 시간 유럽 전체 사용량(560㎿)의 40%가 넘는 양이다.

프랑스는 유럽 다른 나라에 비해 전기요금이 저렴해 전기를 이용한 난방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프랑스 정부 역시 겨울철 전력난 해결책으로 시장 개방, 유연한 전력 확보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심야 전기를 활용해 전기를 공급하는 사업자에는 다양한 혜택도 제공할 방침이다.

띠보 레네뀌젤 총국장은 “프랑스 전력판매 시장은 가격보다 에너지 안보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며 “가격은 소비자가 부담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규제정책을 실시하되 시장 개방으로 전력수요 대응에 혁신적 경쟁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발전소를 확보하지 않은 민간공급자를 고려해 수요를 보장하는 것이고 스마트그리드 등 효율적 대안도 경쟁체제에서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랑스는 국가 전역에 양방향 통신이 가능한 원격검침인프라(AMI)를 조성해 소비자 전력사용 패턴을 분석한 효율적 전력망 운영정책을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인터뷰-르꼭 띠보 레네뀌젤 프랑스 생태에너지부 총국장

“전력 판매 시장 정책은 시장의 자율경쟁을 장려해 혁신적 공급선을 만들어 나가는 게 핵심입니다. 가격 이점과 발전설비 등 전력망 투자 확충보다 에너지 안보에 주안점을 둬야 합니다.”

프랑스의 에너지 정책 책임자인 르꼭 띠보 레네뀌젤 생태에너지부 총국장은 1990년대 후반부터 프랑스 정부의 판매 시장 정책을 실현한 경험에서 에너지 안보에 가장 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정된 전력 생산체계에서 수요가 급증하는 피크마다 전력난을 겪고 있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민간 판매 시장 개방을 활용한 경쟁이 설비를 확충하지 않고도 수요·공급 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믿고 있다.

띠보 레네뀌젤 총 국장은 “2016년 완전 자율 경쟁 시장을 앞두고 지금까지 여러 경험에서 에너지 안보와 저렴한 전기요금은 공존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며 “가격보다 안정적 수요·공급 기반 에너지 안보체계 마련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저렴한 가격정책에 집중하면 전력망 고도화 등의 투자나 효율적 에너지 체계 구축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이유다.

띠보 레네뀌젤 총국장은 “가격 인상은 시장 개방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동안 독점 기업이 주도해온 설비를 보다 안정적 경쟁체제로 갖추는데 필요한 비용이 반영될 것”이라며 “시장이 성숙해지면 전기요금은 떨어지고 글로벌 경쟁력까지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도 판매 시장을 개방한다면 초기에는 전기요금이 오를 것을 염두에 두고 점진적 규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피력했다.

띠보 레네뀌젤 총 국장은 “지난 2011년 한국의 정전사태는 한국전력의 적자경영 탓에 설비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수요·공급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으로 안다”며 “그동안 한국 소비자는 정부 보조금 덕에 싼 요금으로 전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시장이 개방되면 요금이 발전 비용에 따라 합리적으로 조정되는 건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전기요금 인상을 소비자와 공감대를 이루면서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향후 시장 개방에 따라 전력공급 효율 및 안정화는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다.

띠보 레네뀌젤 총 국장은 “경쟁에서 민간기업에 기대되는 것은 스마트그리드 등을 이용한 각종 서비스 정책일 것”이라며 “고객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전기 공급은 결국 가격 인하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정책은 시장을 위한 수단을 만드는 것이지 가격이나 시장 경쟁력을 갖추는 건 기업의 업무로 명확히 구분해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통신사처럼 원하는 전력판매사를 선택할 수 있어요”

프랑스 가정 등의 저압(36㎾h 미만)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전력 판매 회사를 선택할 수 있다. 마치 품질이나 가격·서비스에 따라 휴대폰 통신 회사를 선택하는 것과 같다.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식당을 운영하는 남모(53) 씨는 1993년 프랑스로 이민 온 후 줄 곳 EDF의 전기를 사용하다 지난해 민간 판매회사인 ENI로 바꿨다. 이후 전기요금을 10%가량 절감했다. 식당의 전기사용 패턴이나 사용량에 따라 유리한 전력회사를 택한 것이 주효했다.

남 씨는 “스마트폰 사용자가 서비스나 품질에 따라 원하는 통신사를 선택하는 것처럼 전력회사를 선택할 수 있다”며 “EDF 전기를 사용하다가 지난해 ENI로 바꾼 후 매월 15만원정도 나오던 요금이 최소 10%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의 경험상 전력회사를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몰랐지만 ENI 등 민간 전력회사 영업 사원이 식당을 방문해 자사의 차별화된 전력공급체계로 지금보다 저렴한 요금으로 전기를 공급해준다는 말에 회사를 옮긴 것이다.

남 씨는 “프랑스에서는 개인도 회계사가 각종 공과금도 처리하다 보니 온갖 에너지 요금 처리에 큰 관심 없었지만 식당을 찾은 ENI 직원으로부터 정보를 접하면서 공급사를 바꾸게 됐다”며 “요금제도가 다양하거나 사용 패턴을 분석하는 정교한 시스템은 아직 없지만 민간 공급사의 효율적인 전력 유통 운영 체계만으로도 시장 개방 덕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전력 요금제도는 정부가 정한다. 하지만 소비자의 사용 패턴을 분석해 맞춤형으로 전기를 제공하는 체계는 아직 미흡한 상황이다. 민간 공급사가 전력을 프랑스 외에 국가에서 확보하거나 효율적 유통·운영만으로도 소비자는 전기요금을 절감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지고 있다.

남 씨는 “다른 유럽 국가보다 전기요금이 저렴해 겨울철 난방기기 사용률이 매우 높아 전기요금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민간회사별로 (피크) 시간에 따라 할인요금을 적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용자 패턴에 기반을 둔 체계적 전력요금제 실시는 아직 법규화되지 않았지만 사용절감을 유도하는 할인 정책을 이용한 민간 기업의 마케팅 경쟁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표]프랑스 전력 판매 시장 현황(2013년 초 기준)

[표]프랑스의 전력판매 시장 개방 주요 정책

※ [전력거래, 글로벌 시장서 해법을 찾다] 시리즈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기획취재팀=김동석부장(팀장·호주) dskim@etnews.com, 윤대원(영국), 함봉균(일본), 조정형(싱가포르), 박태준(프랑스), 최호(미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