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차라리 휴대폰 바겐세일을 장려해라

`10만원 구매 고객에게 상품권 1만원, 100만원 구매 고객도 똑같이 상품권 1만원.`

백화점 사은행사를 이렇게 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10만원어치 구매 고객이 소비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며 반색할까. 100만원어치 고객은 사회 정의를 위해 기꺼이 동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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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유통가가 조만간 이런 논쟁에 휩싸일 판이다. 정부가 이른바 `호갱님 방지법`으로 `보조금 정액제`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신사는 3만원짜리 요금제 가입자나, 9만원짜리 요금제 가입자나 똑같이 보조금 27만원을 제공해야 한다. 아니면 처벌을 받는다.

`호갱님`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외계어다. `호구`와 `고객` 두 단어를 합친 말이다. 처음에는 휴대폰 판매상이 어리숙한 손님을 부르는 은어였다. 하지만 지난해 유례없는 보조금 전쟁으로 `17만원짜리 갤럭시S3`까지 등장하면서 이젠 온 국민이 `호갱님`이 될까봐 안절부절 한다.

삼성전자의 새 스마트폰 `갤럭시S4` 판매가 저조한 이유 중 하나도 `호갱님 공포` 때문이다. 오늘 80만원을 주고 싼 갤럭시S4가 조만간 17만원에 팔릴까 두렵다. 인터넷엔 `호갱님 안 되는 법`을 소개하는 글도 수두룩하다. 고무줄 같은 보조금과 비뚤어진 상혼이 낳은 슬픈 자화상이다. 오죽했으면 정부가 `보조금 정액제`라는 극약 처방까지 내렸을까.

그런데 의문점이 남는다. `요금제 불문 보조금 탕평책`이 과연 합리적인가. 소비자에게 진짜 이득이 되는가. 그렇다면 보조금과 비슷한 백화점 판촉 상품권에도 확대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전자신문이 최근 미국, 일본, 홍콩 등 주요국 갤럭시S4 월 사용료를 조사한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미국에서는 9만원 이상 요금제 가입자가 갤럭시S4를 공짜로 받는다. 반면에 보조금 평등주의에 묶인 한국에서는 비슷한 요금제에 50만~60만원의 단말기 값을 더 지불해야 한다. 보조금 하향평준화가 오히려 휴대폰 사용료를 올려놓은 셈이다.

보조금 문제는 동일 요금제 가입자를 차별하는 게 핵심이다. 9만원짜리 요금제 가입자와 3만원짜리 요금제의 보조금 격차는 차별이 아니라 차이다. 백화점 판촉처럼 `규모의 소비`를 촉진하는 마케팅 방안이다.

문제의 핵심을 보자. 동일 요금제에서 `호갱님`이 속출하는 것은 보조금이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100만원 구매 시 10만원 상품권`이라는 광고 전단지가 뿌려지고 전국 백화점이 똑같은 마케팅을 펼치는 백화점 사은행사와 다른 점이다.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대책 중에도 보조금을 투명하게 관리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런데 구체적인 방법론이 빠져있다. 현실화에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보조금 탕평책`보다 `보조금 투명책`이 더 급한 이유다. 백화점은 되는데 통신사는 안 된다면 차라리 백화점을 따라 해보는 건 어떨까. 백화점 바겐세일처럼 통신사가 보조금을 이용해 휴대폰 바겐세일을 공개적으로 펼치는 것이다. 소비자는 `호갱님 공포`를 떨치고 싼 값에 휴대폰을 구매할 수 있다. 통신사엔 가입자 확대의 좋은 기회가 된다. 정부가 보조금 문제를 너무 마녀사냥식으로 몰아가는 건 아닌지, 그래서 소비자 혜택보다 보조금 떼려잡기에만 매몰되는 건 아닌지, 이제 이성적으로 찬찬히 따져 보자.


장지영 ICT방송산업부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