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거래, 글로벌 시장서 해법을 찾다]<1>프롤로그-전력시장 미래, 해외에서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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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과 관련해 전력시장 개방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전력 민영화, 전력산업 구조개편 등으로 일컬어지는 전력시장 개방은 정권 교체 때마다 언급되는 단골 메뉴다. 하지만 만성화된 전력 부족,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원전운영, 글로벌 에너지 경쟁으로 이번 정권에서 그 중요성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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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새 정부 기조는 전력시장의 점진적 경쟁 도입이다. 인수위 시절부터 단계적으로 발전과 판매 부문 참여사업자를 늘려 전반적 서비스 품질 제고 필요성을 언급했다. 지난 2월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민간기업의 신규 발전 사업 참여를 대거 허용한 것은 이 같은 방향성을 잘 보여준 사례다.

전력시장 구조개편은 12년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전력시장은 2001년 발전 부문만 경쟁을 도입하고 판매는 독점하는 기형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경쟁 도입은 에너지 안보에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이에 전자신문은 프랑스, 영국, 일본, 싱가포르, 호주, 미국 6개국 해외 전력시장을 돌아보고 그들의 전력시장 운영현황과 문제점, 개선방안 등에서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9회에 걸쳐 집중 분석한다.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전력산업 구조개편

우리나라 전력시장 개방은 2000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촉진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면서 시작했다. 다음해 한국전력에서 발전 부문이 6개 회사로 분리되고 전력거래소가 설치되는 초기 작업이 진행됐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그 이후 배전 부문도 마저 분리하고 민영화해 판매 부문에 경쟁을 도입할 계획이었지만 실행되지 않았다. 시장개방 논의는 2006년 이후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촉진법은 판매 부문 시장경쟁 도입 계획연도였던 2009년을 넘어가면서 사실상 영향력을 상실했다. 이후 정부는 발전부문만 경쟁을 도입하고 판매는 독점구조를 유지하는 구조가 계속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전력시장 개방을 추진한 나라 가운데 판매시장을 독점으로 유지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력 관계자들은 현재 전력시장 상황을 기형적 구조로 판단한다. 실제로 발전에서 배전계통까지 도매 부문은 시장논리로, 배전에서 수용가까지 이어지는 소매 부문은 정책논리로 전력거래가 이뤄지면서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 부작용은 비현실적 전기요금이다. 도매시장은 시장논리대로 연료비, 설비투자비 등에 따라 전력요금이 변하지만 소매시장은 한 번 정책적으로 정해진 요금 그대로 변함이 없다. 도매요금이 소매시장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판매시장을 독점하다 보니 소매시장 전기요금은 정부 정책의지에 바로 반응을 보인다. 물가안정 대책에서 희생양 1순위가 항상 전기요금에 맞춰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표심을 겨냥한 정치논리에서 전기요금은 항상 뭇매를 맞았다.

이러한 기형적 구조 때문에 한전은 발전소에서 사들이는 가격보다 싸게 전기를 판매해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겉으로는 정부의 의지대로 잘 맞춰진 톱니바퀴처럼 움직이지만 이미 전력시장은 심각한 병을 안고 있다. 정부도 팔면 팔수록 손해만 늘어나는 지금의 시장 구조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는 없다. 시장개방을 다시 추진하든지, 과거처럼 통합 운영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만 한다.

◇시장 통합과 개방 운영의 장단점

전력시장 개방과 경쟁 도입 논란이 10년 넘게 표류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전력망 상황과 연관성이 높다.

다른 나라와 달리 고립된 전력망, 자원 빈곤, 좁은 국토의 3대 난제로 안정적 전력수급 여건이 좋지 않다. 연료는 수입에 의존하고 정전위기 시 다른 곳으로부터 전력을 끌어올 수도 없으며 신재생에너지 개발 환경도 녹록지 않다.

전력수급 3대 난제는 지난 10년간 전력시장 개방 반대 의견을 지탱해온 핵심 명분이다. 지금도 시장 개방에 우려를 표하는 대다수는 민간경쟁 도입 시 국가 전력수급이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안정적 공급 측면에서 정부 주도 통합적 전력관리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전력체계가 요금을 빼고는 전력공급 면에서 위험도가 낮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문제는 비현실적인 전기요금 여파가 산업 붕괴를 우려할 수준까지 왔고 정부 정책도 더 이상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닥쳤다는 점이다.

판매 사업을 독점하는 한전은 원가 이하 전기요금으로 지난해 부채만 95조원을 넘겼다. 부채의 이자를 갚기에도 버거운 상황이다. 전기요금의 잠재 인상요인으로 향후 폭탄인상과 세금조달 부작용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정부의 전력정책도 민원에 계속 발목잡히고 있다. 발전소 건설 신규 부지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에 송전선로 건설, 기존 노후발전소 설비 개선도 지역 반발에 막혔다. 시장 수요에 맞춰 정부 주도 하에 공급을 맞춰가던 기존 방식이 한계에 다다른 셈이다.

전력시장 개방은 다양한 전기요금 상품의 등장과 소비자 선택권의 증가, 사업자 경쟁에 따른 요금·서비스 품질 개선이 대표적인 장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전기요금으로 현재 전력상황을 소비자에게 직접적으로 알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크다.

매번 여름과 겨울 전력피크 때마다 정부는 에너지 절약을 외친다.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일은 수개월이 걸리고 그나마 성사여부는 정치논리에 알 수 없다.

경쟁 시장에서는 소비자 선택에 맡겨진다. 전력이 부족하면 요금은 올라가고 수요는 줄어든다. 정전을 막으려 강제적 제재나 인센티브, 캠페인을 전개할 필요도 줄어든다.

개방 시장의 단점은 일부 사업자의 무책임한 행동에 따른 시장붕괴와 정전 위험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기업 특성상 수익이 나지 않는 상황이 오면 전력을 생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다.

틀린 말이 아니다. 전력시장 경쟁체제를 도입한 해외에서 이 같은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사업자 담합으로 발생하는 시장가격 조작도 불안요인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시장에 플레이어가 늘어나고 적절한 규제를 도입하면 예방할 수 있다.

◇전력시장 개방…규제도 필요해

미국 캘리포니아 대정전은 전력시장 개방의 부작용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례다.

캘리포니아 대정전은 사업자들이 시장가격을 담합·조작하는 등 경쟁시장을 맹신하고 이를 견제할 수단이 부족한 상태에서 벌어진 사고다. 시장 환경을 무시한 극단적 민영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선례다.

전력은 이제 우리 일상의 필수재다. 그만큼 시장 개방에서 예상되는 부작용을 견제할 철저한 규제대책이 필요하다. 전면적 개방에 앞서 제한적 사업자 진입 허용 등 시장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완충기간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새 정부가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속도 조절을 기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전력전문가들은 국내 전력시장은 개방이 필요하지만 현재로서는 많은 준비 작업을 거쳐야 한다는 의견이다. 대표적 선결과제는 전기요금이다. 한전이 원가 이하로 소비자에게 전기를 공급하는 현재의 요금체계에서는 그 어느 기업도 사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정부가 전기요금에 간섭을 줄이고 설비와 연료, 거래가격이 소매시장에 반영돼야 한다.

또 하나는 사업자가 가질 수 있는 시장지배력을 제한하는 조치다. 사업자 풀을 넓혀 국가 전력망에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일부 사업자에 의해 국가 전력망이 흔들리는 위험을 줄일 수 있고 시장 참여 사업자도 늘릴 수 있다.

무엇보다 전력시장을 규제할 전문기관이 필요하다. 정책과 규제를 분리하기 위함이다. 지금 우리는 정책과 규제가 함께 움직이면서 정책에 따라 전기요금이 결정되는 구조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야구로 치면 스트라이크존은 `정책`이고 공이 존으로 들어왔는지를 따지는 심판은 `규제`”라며 “정책과 규제를 명확히 구분해야만 전력시장이 외부 압력에 영향을 받지 않고 운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 “지금이 시장 경쟁 도입 적기”

“전력이 부족한 지금이 시장 경쟁을 도입할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는 전력산업 구조개편과 관련해 전력이 부족한 지금이 한국전력공사 이외의 민간 전력판매사업자가 진출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의 주장은 공급예비력이 충분해 전력수급이 안정적일 때 시장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일반적 생각과 궤를 달리한다. 그의 생각은 자체 보유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보다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 교수는 “전력예비력이 충분할 때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것은 풍부한 전기를 싸게 사서 많이 쓰는 과소비 구조를 의미한다”며 “전력 생산 자원을 모두 수입하고 다른 곳에서 전력을 끌어올 수도 없는 우리나라 상황에는 맞지 않은 구조”라고 설명했다. 늘어나는 수요에 따라 계속해서 발전소가 늘어나고 사업자가 원가경쟁을 펼치는 과열시장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오히려 지금처럼 전력이 부족할 때 민간 기업이 시장에 참여한다면 전력관련 기술·산업 육성 효과가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가격이 아닌 효율화 경쟁이 붙으면서 같은 자원에서 서비스와 가격경쟁력을 갖추고자 최신 에너지 설비기술, 에너지저장장치(ESS), 에너지 절약 시스템 등을 다수 도입하고 더 나아가 스마트그리드도 속도를 낼 것이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계통 부문은 계속해서 정부차원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봤다. 발전과 판매, 모든 사업자가 의지하는 유일한 네트워크인 만큼 정부가 공정하고 책임있게 유지해야 시장 개방에서 가장 기초적인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 운영과 규제 중요성도 강조했다. 수많은 사업자가 다양한 요금제와 서비스를 출시하는 과정에서 계통이 이를 담당할 수 있는지가 확인돼야 하기 때문이다. 규제는 사업자가 이윤 추구 욕심에 국가 전력계통에 부하를 줄 수도 있는 상품을 무리하게 내놓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이 교수는 이런 측면에서 전력거래소와 전기위원회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전력시장 개방과 전기요금 인상, 대규모 정전을 연결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장을 유지하려 요금이 현실화 수준까지 오를 수 있지만 이를 인상이라 보기는 힘들고 시장에 플레이어가 많아지면서 대규모 정전 우려도 줄어들 수 있다”며 “규제를 어떻게 하는지의 문제지 시장 개방을 전력위기로 연관지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윤대원(영국), 함봉균(일본), 조정형(싱가포르), 박태준(프랑스), 최호(미국)기자


기획취재팀=김동석부장(팀장·호주) dsk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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