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제조업 `유턴`-기업 살리는 유턴이 우선

제조업 유턴 유행인가 필연인가

제조업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국내로 생산 시설을 이전하는 `유턴`에 대한 관심이 높다. 정부는 성장·고용률 저하에 부딪힌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대안으로 유턴을 꼽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유턴의 경제적 효과에 관해서는 이견이 없다. 국내 고용을 창출하고 국내총생산(GDP) 증가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개별 기업 차원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A, B사 사례처럼 유턴을 바라보는 시각은 기업별로 다르다. 유턴에 대한 체감도가 제각각이다.

자칫 국내 경제 활성화라는 그림에 함몰되면 유턴 당사자인 기업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정부와 관계 기관이 심도 높은 논의를 거쳐 유턴 지원 정책을 가다듬고 또 가다듬어야 하는 이유다.

◇누구를 위한 유턴인가

“(국내로 유턴한 후에) 제대로 자리 못 잡으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유턴을 추진 중인 제조업체 관계자의 고민이다. 그는 “생산 시설을 옮기면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기 마련”이라며 “이에 대한 리스크를 어떻게 줄일지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제조업체에게 생산라인은 핵심 중 핵심이다. 시설 규모에서부터 위치, 가동률, 인력, 물류 등 수많은 요소가 톱니바퀴 맞물리듯 맞아떨어져야 한다. 나라 안에서 옮기는데도 수백, 수천가지 체크 리스트가 발생한다. 국경을 넘는 생산시설 이전은 두말할나위없다.

유턴을 검토하는 기업의 고민은 여기서 출발한다. 국내 지역경제 활성화보다는 사업 안정성 확보가 우선이다.

정부의 유턴 정책 출발점은 지역경제 활성화다. 정부가 글로벌 전문기업 육성을 기치로 내걸면서도 제조시설 국내화를 촉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출발점이 서로 다른 정부와 기업이 엇박자를 내기 시작하면 유턴의 효과를 살리기 어렵다. 국내 복귀 후 개별 기업의 수익 개선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가령 `정부가 유턴을 장려해서 국내로 복귀했더니 오히려 상황이 악화됐다`는 식의 불만이다.

국내 경제 활성화와 개별 기업의 발전을 동시에 풀어내는 묘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유턴 지원, A에서 Z까지

해외 진출 기업이 국내에 안정적으로 복귀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의사 결정부터 국내 복귀, 이후 사업 안정화 단계까지 전 주기적 지원책이 요구된다.

유턴을 결심했거나 검토하는 기업이 우려하는 부분은 크게 두가지다. 먼저 철수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현지 정부, 근로자들과의 마찰이다.

김범준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해외 사업장 청산이 원활하지 않으면 기업은 물론 국가 간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며 “외교적 마찰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심한 지원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부분은 정부 역시 조심스러운 사안이다. 중앙 정부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은 협의가 가능하지만 지방 정부에서 비공식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관여하기 힘들다.

권평오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은 “공식 제도에 관해서는 양국 정부 통상협상 등을 통해 풀어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문제는 국내 복귀 후 사업 안정화다. 공장 가동 시점에 맞춰 필요 인력을 채용하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이다. A사가 신 공장을 경기도에 구축하는 것도 인력 때문이다. A사는 경기도에서 향후 공장 부지 확대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됨에도 인력 때문에 이곳을 택했다.

A사 관계자는 “대규모 지방 산업단지에 생산시설을 구축하면 환경 측면에서 유리하지만 인력 채용이 힘들고, 본사와 교류 비용도 높아져 포기했다”고 전했다.

기업 자체적으로도 심도 높은 검토 과정이 요구된다. 장현국 삼정KPMG 이사는 “과거 우리 기업이 중국으로 나갈 때 집중적으로 고려한 것이 인건비, 물류비, 땅값이었다”며 “국내 복귀 시에도 이들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검토해 기업별로 유불리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유턴 기업 입법 서둘러야

아직 모호한 유턴 기업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고 흩어진 지원 체계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유턴기업지원법 입법도 시급하다.

유턴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아직 `유턴기업은 무엇이다`라고 정의내리긴 어렵다. 지원 기업 선정 기준도 모호할 수밖에 없다. 유턴 추진 기업과 국내 사업장만 가동하던 기존 기업 사이에 형평성, 역차별 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지원 기능도 각 부처와 기관에 흩어져 있다. 유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종전 중소기업 지원제도를 연계하다 보니 지원 기능이 산재됐다. 김 교수는 “유턴 기업 지원제도 특성과 체계적 지원 필요성을 고려할 때 유턴기업지원법 제정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관련법 입법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11월 산업통상자원부가 유턴기업지원법을 제출했고, 올 3월엔 전정희 의원(민주당)이 의원입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여야가 입법 취지에 동의하고 있어 정치적인 돌발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가 예상된다. 일정대로라면 이르면 올 연말 법적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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