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기립박수보다 중요한 것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미 동맹 60년 만에 미국 의회 연단에 선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의 연설에 대한 참석자들의 반응이었다.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청중과 눈을 맞추고 상대의 반응을 살펴가며 또박또박 강약을 조절해 낸 박 대통령의 영어 연설은 여섯 차례의 기립박수를 포함해 모두 마흔 번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덕분에 당초 30분 예정이던 연설은 34분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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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통령의 미 상하원 합동연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비롯해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총 여섯 번째다. 영어 연설도 네 번째다.

이 중 박 대통령이 유난히 눈에 띈 것은 단아하면서도 힘 있는 여성 리더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도 있지만 이번 연설이 이뤄진 배경 때문이다. 보통 방문한 국가 원수의 미 의회 연설은 미국 측이 상대를 초대한 `국빈방문`시 예우 차원에서 이뤄진다. 반면에 박 대통령의 연설은 양국간 현안 협의를 위한 `공식 실무방문` 중 미 의회가 직접 요구해 이뤄진 것이라 의미를 더한다.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졌고, 미국 의원들도 두 나라간 협력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깊이 느끼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 역시 안보동맹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머나 먼 이국 땅에서 피 흘렸던 미국인의 노고를 치하하고 앞으로 한미 관계는 경제, 사회, 동북아 평화 등 전 방위적으로 머리를 맞대는 미래지향적인 `21세기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해갈 것임을 수차례 강조했다.

전 세계 언론을 통해 실시간 타전돼 나가는 박 대통령의 연설은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함께 만들겠다는 `우리의 미래(Our Future Together)`가 여전히 불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같은 장소에서 받았던 마흔 다섯 번의 박수보다 숫자가 적어서가 아니다. 아마 양국이 직면한 가장 핵심적 문제, 북한의 위협에 대한 원천적 해결 방안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개정 등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이해관계 조정이 쉽지 않아서일 것이다.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는 한미 원자력협정 재개정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재논의, 원산지 기준 완화 등 현안에 대한 접근이 이뤄지지 않고는 계속 겉도는 동맹 관계에 머물 수밖에 없다.

미국과 우리나라는 지난 60년간 언제 깨어질 지도 모르는 평화를 유지하고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 부단히 서로 노력해왔다. 그 간의 관계를 `글로벌 파트너십` 단계로 격상시키려면 결국 양국 간 쟁점으로 남아 있는 현안에 대한 조금이라도 진전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그런데 그 같은 소식은 귀를 씻고 봐도 들리지 않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의 기립박수가 몇 번이나 됐는 지를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 치적을 따지는 것은 낯간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박 대통령을 수행했던 경제인들이 한국에 돌아와서 새 정부 국정 어젠다인 `창조경제`에 맞춰 어떤 투자 `보따리`를 내놓을 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정작 보따리를 풀 사람은 박 대통령이다.

창조경제는 앞으로 치러질 박 대통령의 수 많은 해외 순방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실속있을 것인가에서부터 시작될 것 같다.


정지연 국장석부장 jyj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