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와 조달, 시공을 의미하는 `EPC`는 건설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어다. 건설사들이 공격적으로 진출한 해외 플랜트 시장에서 이젠 기본이자 필수인 사업모델이다.

EPC는 플랜트 설비가 구축되는 전주기의 사업을 하나의 사업자가 도맡으면서 총 수익을 배 이상 늘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주로 건설사들은 자재조달에서 유통 차익을 남기거나 공사기간은 단축해 시공비를 절감하는 식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
주택건설 경기가 불황을 맞으면서 이제는 거의 모든 건설사들은 물론 엔지니어링 회사들까지 플랜트 EPC에 진출한다. 심심치 않게 대규모 계약 소식이 들리면서 EPC는 건설업계의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건설업계는 울상이다. 얼마 전에는 쌍용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지금은 제2의 쌍용건설 후보에 대한 입소문이 퍼졌다.
건설업계의 위기는 집을 지어도 팔리지 않는 불황이 가장 크다. 여기에 탈출구가 될 것으로 예상했던 플랜트 EPC 사업의 계속되는 수익악화도 큰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건설시장의 새로운 먹거리고 평가받고 있는 플랜트 EPC의 가장 큰 문제점은 너무 많은 플레이어다.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조단위를 넘어가는 대규모 사업이긴 하지만 이 시장에 참여하는 대형 건설사들이 너무 많다보니 경쟁은 치열하다. EPC 특성상 기업 간 기술력 차이는 크지 않다. 이러다보니 경쟁은 자연스레 가격 내리기로 치닫는다. 건설사들 사이에 되도록 가격경쟁을 지양하자는 분위기도 조성됐다.
지금까지의 플랜트 EPC 사업모델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필요할 때다. 더 이상 발주사들이 내놓는 EPC 사업 수주만으로 기업 수익을 보장할 수 없다. 업계는 건설사들이 사업을 직접 개발하는 수준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개발도상국을 시찰해 그 나라에서 필요로 하는 인프라가 무엇인지 점검하고 사업의 타당성과 개발계획을 기획해 제안하는 방법이다.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유럽과 일본의 선진 기업들이 개발도상국의 산업단지와 도시개발 계획에 그 저력을 발휘한다. 연합을 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물론 부지검토 및 도시개발 관련 컨설팅사와 건설사들이 힘을 합쳐 개발단지 구축 모델을 도출해야 한다. `중동신화`를 일군 저력으로 건설사들이 새로운 도전에 나서주길 바란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