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이어 SK하이닉스·LG실트론 까지
“반도체 공정 과정에서 쓰이는 유독물질이 무수하게 많은데 공장을 바쁘게 가동하다 보면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전 반도체 회사 고위 간부)
삼성전자 경기 화성 반도체 공장에서 불산 누출로 인명피해를 낸 지 한달도 채 안돼 지난 22일 SK하이닉스 충북 청주 공장과 LG실트론 경북 구미 공장에서 또 다시 맹독 물질인 염소가스와 불산이 누출됐다. 특히 이번에 사고가 난 불산 용액과 염소 가스는 반도체 공정에서는 필수적인 물질인데다 점점 사용량이 늘어나고 있지만 정부·업계의 전반적인 안전 관리 시스템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심각한 상황이다.
윤성규 환경부장관이 청주산업단지를 방문해 적극적인 사고 예방 대책을 촉구한 게 지난 19일이지만 연이어 안전사고가 터졌다. 특히 글로벌 대기업인 세 회사 모두 은폐 의혹이 제기되고 늑장대응이 문제가 됐다. 삼성전자는 사건이 일어난 지 15시간, SK하이닉스는 신고를 미루다 인터넷 게시물에 사건 내용이 퍼지자 4시간 만에 신고를 해서 은폐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LG실트론 역시 6시간이나 지난 23일 새벽 신고가 이뤄졌다.
불산은 반도체 웨이퍼를 씻어내고 불필요한 산화막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염소가스는 반도체 건식 식각(드라이 에칭) 방식이 늘면서 사용량이 함께 증가하고 있다. 반도체 공정에서 주로 쓰이는 구리 역시 환경 파괴 등 문제가 있어 별도 클린룸 안에 별도 클린룸을 만들어 취급하고 있지만 불산·염소가스는 일반 클린룸 내에서 주입되기 때문에 사고가 나면 피해가 크다.
실제로 한국 반도체 업계의 안전 불감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3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직원은 독성 물질인 불산(플루오르화수소) 용액에 웨이퍼를 담갔다 빼는 세척작업을 직접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노동부의 삼성전자 불산 사태 조사에 따르면 이 회사는 하도급 업체에 유독물질 관리를 맡긴데다 약 2000여건의 안전수칙을 위반했다. 하지만 과징금은 2억5000만원에 불과,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정부 역시 하도급 금지 유해물질 범위에 대한 논의를 지난 9년간 한번도 열지 않는 등 손을 놨다. 이번달 국정감사에서 환경부는 유해물질 하도급업체 실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빈축을 샀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