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구글 글래스`라는 이름으로 스마트 안경을 내놨다. 최근 회사 홈페이지에 똑똑한 안경을 체험할 일반인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올렸다. 얼마 전 구글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직접 구글 글라스를 쓰고 돌아다니는 장면도 포착됐다. 구글이 개발한 스마트 안경의 가장 큰 특징은 별도의 디스플레이가 없다는 점이다. 안경을 착용하면 기기에 달린 헤드업 디스플레이(Headup Display)를 통해 렌즈에 빛을 투영, 증강현실(AR) 방식으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착용자는 다른 일을 하다가도 스마트안경을 이용해 음성 명령을 내리거나 정보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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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에 컴퓨터를 부착해 정보를 표시하는 방식은 산업계에서는 이미 상용화한 기술이다. 특히 항공기나 대형 선박은 대부분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설계가 달라지기 때문에 설계도와 작업지시에 따른 정확한 시공이 생명이다. 하나의 공정에 수많은 설계도가 필요하고 작업절차를 규정한 두꺼운 매뉴얼을 항상 지니고 다녀야 한다. 하지만 작업공간은 비좁고 눈과 손은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경우 스마트 안경과 같은 웨어러블(wearable) 컴퓨터가 훌륭한 대안으로 활용된다. 눈으로는 작업공간을 바라보며 필요에 따라 안경 하단에 투사된 설계도나 매뉴얼로 정보를 얻는다. 매번 다른 작업 공정에도 컴퓨터에 저장된 작업지시에 따라 정확도와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캐나다 등 외국에서 통신설비를 점검하는 엔지니어들은 안경을 하나씩 쓰고 전신주에 올라간다. 안경 디스플레이를 통해 수많은 전력선과 통신 선로가 엉켜 있는 회로도를 직접 확인한 후 손쉽게 작업을 끝낸다. 도면과 작업 지시서를 확인하기 위해 정비차량과 높은 전신주를 사이를 힘들게 오갈 필요가 없다. 작업이 끝나면 안경에 장착한 전화로 복구 통신상태를 직접 확인한다. 이미 10년 전 사이버넛(Xybernaut)이 고립된 지역의 작업자를 위해 상용화한 제품이다.
누구나 손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포터블(portable) 또는 웨어러블 컴퓨팅 욕구는 아주 오래된 얘기다. 인류가 농경생활을 시작하고, 소유와 분배가 요구되면서 휴대 컴퓨팅 수요가 생겼다. 자급자족의 시대를 지나 물물교환과 화폐를 이용한 상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복잡한 계산이 필요했다.
컴퓨팅 능력은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요구됐고, 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휴대장치의 발명이었다. 지금부터 약 4500년 전,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이런 휴대형 컴퓨팅에 대한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장치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주판이다. 주판은 인간의 웨어러블 컴퓨팅 욕구를 만족시킨 최초의 장치다.
또 다른 대표적인 휴대장치가 시계다. 시간은 독립적인 인간이 관리해야 할 상대적이고도 사적인 가치다. 그래서 공공장소에 있는 대형시계와 별도로 항상 휴대할 수 있는 시계가 필요했다. 휴대형 시계, 즉 회중시계는 18세기 중반 이후에서야 등장했다. 그 이후, 시계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휴대용 디바이스로 자리 잡게 된다.
20세기 들어 통신과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동안 물리적으로 따로 존재하던 음향가전, 통신장비, 영상기기 등이 하나의 휴대단말기로 통합된다. 결국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대한 본능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출발했다. 구글이 스마트 안경을 선보이고, 애플이 손목시계형 스마트기기 `아이워치(iWatch, 가칭)` 개발에 집중하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류 역사와 욕망을 기준으로 봐도, 컴퓨터는 이제 물리적인 형태의 진화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주상돈 벤처경제총괄 부국장 sd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