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정의 어울통신]박정희와 김완희 vs. 박근혜와 김종훈

뜻밖이었다. 미래부 장관 내정자 얘기다. 미디어들이 엉터리 장관 후보자 추천서를 써댈 즈음 박근혜 당선인측은 새 정부 대표 부서인 미래부 장관으로 김종훈 벨연구소 사장을 내정했다. 김 내정자는 1998년 통신시스템 기업인 유리시스템즈를 창업한 후 루슨트테크놀로지스에 10억달러를 받고 판 성공한 벤처기업가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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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박근혜정부 브랜드부처 수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기업가 출신으로 유일한 장관 내정자다. 관계나 학계, 정치인이 대거 포진한 새 내각에 이공계 출신의 벤처인 발탁은 의외다.

데자뷰일까. 196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컬럼비아대 전자공학과 교수였던 김완희 박사를 불러들여 과학기술 입국의 책임을 맡겼다. 김 박사는 미국 유타대학에서 전자공학계의 피타고라스 정리라 할 정도로 유명한 `브루니 정리`의 예외를 연구해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이 덕분에 컬럼비아대가 전자회로 부문 톱5에 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은 그 앞에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가리키며 `손가방 하나만 한 게 몇 만 달러인데, 우리는 기껏해야 면직물밖에 수출하지 못한다`고 한탄했다. 전자공업을 일으키고 싶은데 도와달라는 간곡한 요청이 이어졌다. 대통령의 요청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차마 사양할 수 없었다는 게 그의 회고였다.

전자업계 대부였다. 그는 1968년 귀국해 1979년까지 대통령 특별자문역을 맡으며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마스터플랜을 짰다. 말 그대로 백지 상태였던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새 역사를 그렸다. 대통령의 힘이 그에게 실렸다. 전자산업 중흥을 위한 일이라면 각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였다. 박 대통령이 그에게 보낸 친필서신 103통에 나타나 있는 그대로다. 수많은 전자정보통신 정책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이번에는 김 내정자다. 삼고초려처럼 간곡함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가 이끈 벨연구소는 연구원만 1000명이 넘는 글로벌 수재들이 근무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개발인력만 2만3000여명에 달할 정도로 세계 최고의 민간기업 연구소다. 노벨상 수상자도 13명이나 배출했다. IT벤처기업을 직접 창업해서 키워봤으며 1조원이 넘는 인수합병(M&A)의 딜도 성사시켰다. 우리 벤처기업에게는 전설 같은 인물이다.

그런 그가 우리나라 성장동력 부처의 사령탑으로 돌아왔다. 제2의 과학기술 입국을 지향하고자 하는 당선인의 의지다. 선친이 주창한 과학입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일자리 창출 등 4만불 시대를 앞당기기 위한 당선인의 포석이다. ICT와 과학기술로 창업경제, 창조경제라는 새 시대를 열자고 하는 염원도 담겼다. 소프트웨어(SW)와 서비스를 앞세워 C(콘텐츠)-P(플랫폼)-N(네트워크)-D(디바이스)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게 김 내정자의 포부다.

아직은 조심스럽다. 인사청문회도 남았다. 그가 정말 잘 해낼 수 있을까. 미국과는 다른 시장환경, 단단한 관료주의 등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정치적 공세도 돌파해야 한다. 당장 청문회가 부담스럽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국적 문제가 쟁점화 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대는 넘쳐난다. 그에게서 당시 미국 시민권자였던 김 박사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 당파성만 배제한다면 야당도 그의 글로벌 감각과 엔지니어의 역량, 기업경영 능력, 미래 트렌드를 읽는 통찰력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정치인이 아니다. 여야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전문가다. 13살에 미국으로 이민 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자수성가한 1.5세대 기업인일 뿐이다. 너무 후진적, 정파적 잣대만 들이대지는 말라는 얘기다.


박승정 정보사회총괄 부국장 sj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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