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125>DJ와 앨빈 토플러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국정에 바쁘실 텐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1998년 4월 7일 오전.

김대중(DJ) 대통령은 청와대 접견실에서 미래학자로 유명한 세계적 석학 미국의 앨빈 토플러 박사를 악수로 반갑게 맞이했다.

김 대통령은 `생전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다면 감옥에라도 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다독가(多讀家)였다. 김 대통령은 야당 시절인 1982년 청주교도소에서 앨빈 토플러 박사가 쓴 `제3의 물결`을 읽고 “충격을 받았으며 한국을 지식과 정보 강국으로 만들고 싶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고 자서전에서 밝힌 바 있다.

김 대통령과 토플러 박사는 이날이 두 번째 만남이었다. 이 자리에는 토플러 박사를 초청한 정호선 새정치국민회의 정보통신특별위원장(경북대 교수 역임, 현 CAB국회방송 회장)이 배석했다.

김 대통령은 1997년 9월 9일 토플러 박사를 처음 만났다. 새정치국민회의 대통령 후보였던 김 대통령은 이날 서울에서 열린 `코리아서밋` 참석차 내한한 토플러 박사를 서울 63빌딩에서 만나 경제문제에 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그 무렵 한국은 경제회생이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김 후보는 “대선 최대 이슈가 무엇이냐”는 토플러 박사의 질문에 “경제 문제”라고 답변했다. 토플러 박사는 `제3의 물결`을 설명한 후 “미국은 빈민계층에게 직업훈련을 실시하지만 6개월이 지나면 상황 변화로 재교육해야 한다. 한국도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후보는 “앞으로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로 성장하는 시대는 지났다.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 전환해야 하며 대기업들은 문어발식 확장을 지양하고 제품 개발과 경영혁신을 이룩해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후보가 1997년 12월 대선에서 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1998년 1월 22일 토플러 박사는 김 당선인에게 “새 정부의 정보통신 분야 정책자문을 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 토플러 박사는 편지에서 “지난해 9월 한국에서 김 후보를 만났을 때 집권하면 새 정부를 돕겠다는 약속을 했다”며 “이제 그 약속을 지키고 싶다”고 밝혔다.

김 당선인은 정호선 의원을 통해 2월 3일 토플러 박사에게 답신을 보냈고 정 의원 초청으로 3월 31일 한국에 온 것이다. 토플러 박사는 국내에 머물면서 이종찬 국가정보원장(현 우당장학회 이사장)과 배순훈 정보통신부 장관, 강창희 과학기술부 장관(현 국회의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과 만났고 4월 2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특별강연도 했다.

이런 연유로 김 대통령과 토플러 박사의 한 시간여 접견 분위기는 격의 없고 화기애애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만남이 지식정보 강국을 향한 대장정(大長程)에 영감(靈感)을 주었다”면서 “토플러 박사는 우리가 마련한 실업대책 중에서 중소·벤처기업 육성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힘을 실어 주었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토플러 박사에게 한국 정보화에 지속적인 도움을 요청했고 토플러 박사는 “기꺼이 동참하겠다”고 화답했다.

이날 두 사람이 나눈 대화 내용을 들어보자.

◇김 대통령=한국은 정보화 시대에 대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토플러 박사로부터 도움말을 듣게 돼 고맙습니다. 계속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외환위기로 실업자가 150만명에 이르고 고금리로 중소기업이 하루에 100개 이상 도산합니다. 어떤 해결책이 있겠습니까.

◇토플러=미국 경험에 비추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통령께서 중소기업 육성에 중점을 둔 일은 잘하신 결정입니다. 지난 10년간 미국 대기업은 요즘 한국처럼 구조조정을 했고 고용은 대폭 감축했습니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고용을 늘렸습니다. 중소기업이 새로 늘린 고용이 대기업들이 줄인 일자리보다 많아 결과적으로는 고용이 늘었습니다. 재벌 구조조정과 관련해 몇 개 분야로 특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업의 원료·부품 조달 등을 외부에서 확보하고 있습니다. 미국 자동차 업계는 과거 철강 등 재료를 내부에서 조달했지만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외부에서 조달하면 보다 좋은 가격 조건에 구매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김 대통령=한국 벤처기업을 어떻게 전망합니까.

◇토플러=한국 벤처기업 경영과 미국에서 말하는 벤처기업, 벤처자본은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한국 벤처기업은 흔히 저리 대출을 제공받은 기업으로 생각합니다. 기업 이익의 5%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면 벤처기업 범주에 속합니다. 미국은 작은 규모의 유망한 기업을 벤처라고 합니다. 벤처 자본이 어디로 이동할 것인지는 시장이 결정합니다. 한국도 벤처자본과 관련해서 법적 금융상의 제도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자본 조달 방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최근 기업들은 인터넷으로 자본을 조달합니다. 인터넷에 기업이 무엇을 생산하는지, 어떤 미래를 가지고 있는지를 소개해 자본을 조달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기업이 은행에 가거나 대규모 투자가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본 조달이 가능하고 특히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습니다. 한국 기업도 이런 방법을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김 대통령=어떤 분야가 유망하다고 봅니까.

◇토플러=확실한 답변을 드리려면 제가 한국을 더 많이 알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센서와 신소재, 인공피부 등이 유망합니다. 인공위성 정보와 유전공학을 결합한 첨단 농경 분야도 유망합니다.

◇김 대통령=한국은 21세기 정보화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계속 많은 도움을 기대합니다.

◇토플러=그런 노력은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하겠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정보화 시대 도래와 그 중요성에 정확한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특히 국가 지도자 중에서 그런 인물은 찾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김 대통령께서는 정보화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확고한 비전을 갖고 계십니다. 저는 이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런 비전을 김 대통령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김 대통령=저는 야당 시절에도 정보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당시 새정치국민회의에 전문가를 영입해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 바 있습니다. 앞으로 정보화에 노력할 것입니다. 많은 도움을 기대합니다.

이날 접견에 배석했던 정호선 의원의 말.

“토플러 박사의 저서 `제3의 물결`을 옥중에서 탐독하신 김 대통령께서는 미래 정보화 사회에 대한 관심과 우리나라를 정보대국으로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피력하셨습니다. 토플러 박사는 자신도 한때 실업자였다는 말을 하면서 한국 정보화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김 대통령은 정 의원을 공천한 일도 토플러 박사와의 대화 테이블에 올렸다.

정 의원이 전한 대화 내용.

◇김 대통령=정 의원은 대학 교수였습니다. (제가 공천을 했는데) 많은 사람이 앞으로 정보화 시대가 될 것이라는 걸 알지만 정작 정보화를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안타까움을 느끼던 중에 찾아낸 사람이 바로 정 의원입니다.

◇토플러=아주 선택을 잘하셨습니다.

◇김 대통령=그런데 이 사람을 아는 사람(선거 지역에서)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거 유세할 때 제가 주민들을 이렇게 설득했죠. `우리가 21세기 정보화 시대로 진입하는데 정보화를 아는 사람이 국회에 많지 않다. 입법도 제대로 못하고 예산도 편성할 수가 없어서 지장이 많았다. 나도 정보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실제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21세기 흥망성쇠가 정보화에 달렸는데 정 교수가 우수한 인재라고 인정해 공천을 한 것`이라고요. 그 때 내가 연설할 때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웃음)

김 대통령은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시절인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영호남 갈등 해소와 IT 전문가 영입케이스로 정호선 당시 경북대 전자공학과 교수를 파격 공천했다. 전남 나주 출신인 정 교수는 대구 출신인 박남희 경북대 미술과 교수와 결혼해 영호남 부부로 화제를 모았다.

정 의원의 회고.

“저는 1995년 10월께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고향인 전남 나주에 향토발전연구소를 개설했습니다. 호남은 DJ의 절대 영향력 아래 놓여 있어 DJ가 공천의 열쇠를 쥐고 있었지만 DJ를 만날 수가 없었어요. 측근들이 막았어요. 1996년 2월 20일 대구에서 새정치국민회의 당무회의가 열렸어요. 우여곡절 끝에 19일 밤 10시에 DJ를 아내와 함께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당시 정 교수는 DJ에게 세 가지를 말했다.

“첫째, 자신은 영호남 부부로 영호남 지역 갈등 해소에 최적임자다. 둘째 IT 전문가로 DJ가 정보화 대통령이 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셋째 대구·경북의 DJ 득표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그랬더니 20일 당무회의에 참석하라는 통보가 왔어요. 회의에 참석했더니 DJ가 `어젯 밤에 이 부부를 만났다. 공천과 무관하다. 이야기가 재미있어 불렀다.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하시더군요. 아내가 3분여 `대구 딸이 호남 며느리가 되고 보니 지역 갈등이 너무 심했다. 우리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으로 변해 영호남이 화합하고 DJ가 당선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해 달라`고 말했어요. 이 일이 있은 후 김 총재가 나주지역 공천을 희망하던 당내 중진과 현역 의원 등 쟁쟁한 인사를 제치고 무명(無名)인 저를 막판에 공천하더군요.”

선거가 시작되자 DJ가 나주로 내려와 지지를 호소했다. DJ는 선거자금까지 지원했고 나주에서 민박까지 하며 정 교수를 당선시켰다.

15대 국회에 입성한 정 의원은 초선이지만 능력을 인정받아 새정치국민회의 정보통신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고 김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 아래 앨빈 토플러 박사 외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을 초청해 김 대통령과 면담을 주선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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