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2기 약속, 대부분 못 지켰다…`합의제 위원회 한계` 또 노출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방통위 2기 통신분야 과제 평가

방송통신위원회 2기 체제가 사실상 2주밖에 남지 않으면서 `합의제 방통위 무용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합의제 위원회 조직의 비효율성으로 주요 정책이 줄줄이 표류했기 때문이다.

방통위 2기 역시 종합편성채널 업무에 전력을 쏟았던 1기와 마찬가지로 방송의 정치적 이슈에 매몰돼 산업 정책이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정책보다 정치 공방으로 방통위가 공전하면서 사람보다 조직 메카니즘의 한계가 명확해졌다는 평가다.

대표적인 것이 방송 정책이다. 지난해 12월, 상임위원간 이견으로 KBS2 TV, MBC TV의 의무재전송 채널 포함 여부가 보류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공영방송 채널이라 주장하는 TV가 보편적서비스 차원의 의무재전송 채널에서 빠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서민정책과 직결되는 통신 정책에서도 예외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계철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해 4월 취임 한달여만에 통신3사 CEO와 산업 활성화 정책을 발표했다. 이 위원장과 통신사 CEO들은 △알뜰폰(MVNO) 활성화 지원 △단말기 자급제 확대 △보조금 경쟁 완화 △네트워크 투자 지속 가능한 환경 조성 등에 합의했다. 방통위는 정책을, 통신사는 산업 지원을 맡기로 했다. 위원장과 CEO들이 직접 합의하면서 업계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하지만 이들 정책은 합의제 위원회에서 상임위원간 의사결정이 늦어지는가 하면 원만한 합의로 실효성 없는 상태에서 정책화하는 모순을 드러냈다.

휴대폰 보조금 과열 경쟁 해소 방안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방통위는 통신사 CEO 간담회에서 `범부처 협력 정책`까지 약속했다. 그렇지만 시장이 과열되면 징계를 내리는 대증 요법 이상의 정책을 전혀 펼치지 못했다. 합의제에서 합의가 안 되는 상황을 의식하다 보니 그런 결과로 이어졌다.

통신사는 방통위에 “송구스럽다”고 해명하고도 영업정지를 오히려 경쟁사의 가입자를 빼앗아오는 기회로 악용했다.

스마트폰 대중화로 단말기 출고가격이 올라가면서 과다 보조금의 폐해는 과거보다 심각해졌는데도 정책 수단은 진화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통신사 한 관계자는 “과거 정보통신부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할 뿐, 새로운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며 “원만한 합의를 위해 과거 사례를 기준으로 삼는 위원회 조직의 수동성이 단점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합의제의 폐해가 엉뚱하게 진흥정책으로 불똥이 튀었다는 지적이다. 급기야 휴대폰 출고가격을 조정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의견이 엇갈리면서 여기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제조사는 지식경제부 영역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수 주가 걸리는 `시장조사-제재수위 보고-위원회 의결`이라는 과정만 반복했다. 전체회의에서 담당국장이 “모니터링 시 위반이 발견되면 즉시 중지 명령 조치를 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다른 정치 이슈에 밀려 대책이 전혀 논의되지 않는 상황도 벌어졌다.

방통위 2기의 핵심 추진과제였던 MVNO·단말기 자급제 활성화도 미흡했다. MVNO의 현 시장 가입자 점유율은 2% 남짓, 실제 시장 규모를 보여주는 통화량 점유율은 0.3%에 머물러 활성화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 적극 협력하겠다던 통신사 중 일부는 아직도 가입자 모객에 필수적인 데이터 로밍 등 부가서비스를 개방하지 않고 있다.

MVNO 관계자는 “도매대가 현실화와 같은 필수적인 조건도 방통위가 크게 힘을 실어주지 못했다”며 “정책보다 정치적 구호가 앞섰고 위원회 합의구조의 벽도 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단순 재판매가 아닌 풀(full) MVNO 모델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도 부족한 상황이다.

단말기 자급제 역시 제도 정비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단말기 자급제 활성화를 위해선 통신사 보조금 위주의 단말기 유통 구조에 메스를 들이댔어야 하는데, 방통위가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재 자급제 시장은 아직 데이터조차 없을 정도로 미미하다.

우리나라 네트워크 경쟁력도 계속 추락했다. 방통위 2기가 출범한 후 1년만에 평가받은 `네트워크준비지수(NRI)` 경쟁력은 10위권 밖(12위)으로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발목을 잡은 건 다름아닌 정책·규제환경(43위)이다. 올해 5월 새 평가를 앞두고 미래창조과학부 ICT 전담 조직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짜여지느냐에 따라 10위권 재진입 여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 2기 통신분야 과제 평가

방통위 2기 약속, 대부분 못 지켰다…`합의제 위원회 한계` 또 노출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