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디자인의 27년 역사는 한국기업의 세계 진출과 그 궤를 같이한다. 그 사이 우리는 삼성과 LG, 아모레퍼시픽 등 세계적인 디자인 문화를 갖춘 브랜드를 갖게 됐다. 하지만 고객이 기억하고 신뢰하는 브랜드는 일부 대기업에 국한된다.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기술 중심 기업은 디자인에 취약한 것이 현실이다. 디자인이 기술과의 접목 외에 생산과 마케팅으로 이어지는 입체 경영의 중심이 되지 못하면 브랜드는 만들어질 수 없다. 디자인을 통해 고객에게 전달되는 메시지가 바로 그 기업의 이미지고, 브랜드다.
대기업에 집중된 디자인 파워가 중소기업과 기술 중심 기업으로 확산되는 일은 중소기업의 존폐와 연결될 만큼 중요하다. 디자인은 기술이나 마케팅의 부가 요소가 아니다. 소비자를 향한 애정과 이해에서 출발해 우리의 미래를 꿈꾸게 하고 삶을 변화시켜 줄 수 있는 것이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나는 대덕특구본부의 박인철 초대 이사장의 요청으로 대덕특구로 눈을 돌리게 됐다. 이노디자인은 한국 벤처 기술의 산실인 대덕특구에 토털 디자인지원사업의 수행기업으로 입주했다. 토털 디자인지원사업은 대덕특구 내 우수 기술 기반의 기업을 소비자가 원하는 새로운 형태의 기업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디자인 인프라 구축 사업이었다.
전문 디자이너와 마케팅 관련 인력들이 제품 기획, 생산, 마케팅에 이르는 전 과정에 걸쳐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힘을 합쳤다. 나는 실리콘밸리라는 정글에서 디자인이 기업 생존을 위한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터득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대덕특구의 기업을 상대로 디자인이 `기술을 파는 기술`이며 부를 창조해내는 전략적 마술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우리는 먼저 그동안 해당 연구 기술이 시장에 진출하지 못한 이유를 분석하고 디자인 작업을 진행했다. 특히 전략기획서와 브랜드 아이덴티티 개발이라는 두 가지 개발 업무에 집중 투자했다. 기술과 디자인, 브랜드가 일관된 메시지로 소비자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중요하다.
제품 생산에서 기업 경영의 핵심 분야까지 디자인이 결정하는 시대다. 우리는 디자인을 제품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시작 단계로 바꿔 놓았다. 상상의 세계를 제품개발과 기술력에 연결하면 소비자가 감동한다는 사실을 기업에 알려주는 일은 즐거웠다. 메이드 바이(made by)보다 디자인 바이(design by)가 훨씬 큰 가치를 줄 것이라는 설명에 그들이 공감할 때 마음이 뿌듯했다. 당시 대덕에서 많은 벤처 기업과의 협업은 다양한 디자인 성공사례를 낳았다.
◇디자인은 변화를 만든다
`노인을 위해 제작한 소프트 욕조의 브랜드 파워를 강화하고 싶다.` 대덕 한 업체의 요청을 받아 외형은 단단하면서도 촉감은 푹신한 소프트 욕조의 장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 이노디자인은 `Soft`+`Stone`이라는 단어의 조합으로 `새로운 감각적 체험`을 암시하는 `SOFT STONE`이라는 새로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부여했다.
기존에는 딱딱한 소재의 안전성 문제로 제작할 수 없었던 각진 종이배 모양으로 메인 욕조를 디자인했다. 종이배와 카라 꽃에서 영감을 얻은 선은 심리적으로도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실제로 사용해보면 느낄 수 있는 소재의 우월성을 한껏 강조했다. 차별화된 디자인을 인정받아 독일 iF 디자인어워드 2011을 수상하기도 했다.
◇디자인은 다르게 생각하기다.
가격 경쟁력만을 강조하던 하이패스 단말기 시장에서도 디자인 혁신은 가능했다. 이노는 무선 통신 기술을 가진 업체에 새로운 전원 방식을 제안했다. 새롭게 출시하는 하이패스 단말기는 태양전지를 적용해 한번 설치하면 전원을 고민할 필요가 없도록 했다. 자연 에너지를 활용한다는 관점에서 `태양을 담다`라는 이미지 워드로 최대한 깨끗한 외형을 강조했다.
제품의 외형은 돛단배를 형상화해 자연 친화적인 느낌에 크기와 무게도 매우 가볍게 제작했다. 이 제품은 출시 3개월 만에 2000대가 팔리며 기업 상생 모델로 평가받았다.
◇디자인은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기다
기존 의료기기는 디자인보다는 기기의 정확성이나 신뢰성이 중요했다. 뛰어난 탈모 치료 기술을 가진 업체는 성능은 물론이고 탈모로 인한 사람들의 마음까지 위로할 수 있는 `힐링` 제품을 원했다.
이노디자인 솔루션팀은 제품 사용 시간이 30분이라면, 23시간 30분의 대기상태에 주목했다.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도 인테리어 소품이 돼 실내 공간과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헬멧 형태를 기본으로 숨길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부드러운 곡선에 장식을 배제해 마치 백자와 같이 실내에 자연스럽게 둘 수 있도록 사용자를 배려했다.
◇기술을 만난 디자인은 새로운 용도를 만든다
높은 기술력을 가졌지만 낮은 브랜드 이미지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과도 디자인 협업이 이뤄졌다. 이노는 아이디코리아와 함께 기술력에 디자인을 접목, 전원 공급장치를 겸하는 노트북 쿨링 패드를 기획했다. 지난달 출시한 노트북 쿨링 패드 `볼릿 SP-601`은 스마트폰 충전 및 데이터 통신이 가능한 거치대를 내장한 동시에 멀티태스킹도 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선보였다.
이노는 대덕 특구 내에서 2년간 총 20개의 수혜기업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디자인은 처음부터 완전한 명제가 아니다. 마치 실험실의 가설처럼 문제를 해결하며 도전을 거듭하는 일이다. 때로는 디자인이 만들어내는 대안을 한번에 보여줄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때도 있다. 또 일부는 1년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에 상용화 단계까지 빠르게 발전하기도 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다. 대덕의 연구기업이 가진 훌륭한 기술이 디자인을 만나 세상과 더욱 가까워졌다.
김영세 이노디자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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