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전자산업, 한국과 일본의 역전드라마

1980년대 초 내가 첫 월급을 받고 산 것이 일본 소니 제품인 라디오 겸용 카세트 리코더였다. 제품 성능과 디자인에 탄복하면서 애지중지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2000년대 무렵 주 OECD 대표부 근무 시 프랑스 파리 소재 중학교 교실에서 삼성 휴대폰을 가진 아들 주위로 친구들이 몰려들어 성능, 디자인과 가격을 궁금해 하며 부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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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한 세대를 거치는 동안 일본과 한국의 전자산업 위상은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세계 전자산업 발전을 주도해 왔던 일본은 1970년대 후반 마이크로전자공학(ME)이라는 신기술로 고성능화, 기술집약화, 제품고도화 등으로 파나소닉, 샤프, 소니, 히타치, 도시바 등 세계적 일류기업을 배출하였으며 1990년대까지 선두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 단기 경영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내수시장 안주, 전문인력 확보 소홀, 세계 표준을 외면한 독자방식 고집, 기술개발 투자 저조 등으로 선두 대열에서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1995년 삼성전자는 불량 휴대폰이 시중에 판매되자 500억원 상당의 휴대폰을 수거하여 전량 폐기처분하고 품질경영을 기업 활동의 최우선 목표로 했다. 그 결과 노키아와 애플을 추월하며 세계 최고의 휴대폰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전자산업은 낙관적 시장관, 지속적인 신기술 개발, 적극적 투자, 품질 개선, 전문인력 양성 등을 바탕으로 기존 시장의 지배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신시장을 창출하는 경쟁 우위의 산업으로 성장해왔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과거 1970년대 세계 오일쇼크, 1990년대 외환위기라는 악재 속에서도 미래의 고부가가치 산업은 반도체라는 신념과 적극적인 투자로 `미국 반도체의 20년 패권`과 `일본 반도체의 15년 아성`을 잠재우고 세계 반도체 1위에 올랐다.

디스플레이산업도 과거 일본의 독무대였다. 샤프, 히타치, 도시바 등의 자국 기업들 간에 경쟁을 벌이며 세계시장의 약 90%를 점유했다. 후발주자였던 국내 기업들은 1995년부터 본격적인 대형투자로 기술을 축적하였으며, 결국 2002년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이뤄냈다.

세계무역기구에 따르면 전자제품의 세계 수출 규모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6년 14.8%에서 2011년 5.2%로 급락하였으며 같은 기간 한국은 5.0%에서 5.7%로 상승하며 일본의 전자산업을 앞지르고 있다.

2012년 포브스에서 선정한 `글로벌 2000 업체`에서 파나소닉은 224위, 소니 477위, 샤프 834위를 기록한 반면에 국내 삼성전자는 2010년 55위에서 2012년 26위로 상승하며 세계시장에서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선호와 평가는 언제든지 변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기업의 흥망성쇠도 산업 생태계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며 경쟁력의 우위 또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일본 기업들이 그랬듯이 언제든 자만하면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전자산업은 다른 산업과는 달리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Say)의 법칙이 어느 정도 작용하는 분야다.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환경에서 산·학·연·관 등이 혼연일체가 되어 대·중·소 기업 간 상생을 통한 동반 성장과 지속적 성장을 위한 위기의식 및 신시장·기술 분야 개척을 위한 부단한 노력으로 세계 전자산업의 선두적인 위치를 지속해 나가기를 염원한다.

더불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창조과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한 가장 훌륭한 산업정책이 기업사랑과 기업의 기 살리기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주기를 기대한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전상헌 상근부회장 shjeon@gok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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