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뿌리산업은 국내 제조업의 근간

지난해 주왕산국립공원 주산지의 명물인 왕버들이 말라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산지에서 자생하는 왕버들 27그루는 30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았다. 그러나 지난 1987년 농업용수로 사용을 확대하기 위해 못의 수위를 높이면서 가지가 고사하거나 잎이 작아지는 등 시련을 겪기 시작했다. 왕버들에 올라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등쌀은 생육 환경을 더 악화시켰다. 최근 관계 기관에서 대대적인 외과수술을 진행하고 영양제를 투여하며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어 조만간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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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문 중소기업중앙회 수석부회장

버드나무만큼 강한 생명력을 가진 나무도 드물다. `본초강목`에서는 `세로로 두든 가로로 두든 거꾸로 꽂든 바로 꽂든 모두 산다`고 했다. 전국시대의 철학자 혜자(惠子)는 `전국책`에서 `분질러서 심어도 또한 살아난다`고 기록했다. 우리 조상들은 버드나무를 재녀(才女)에 비유했다. 이쑤시개, 고약, 이뇨제 등 쓰임새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버드나무의 쓴맛에는 진통 효과가 있어 아스피린 재료로 사용된다.

버드나무는 물가에서 특히 강한 생명력을 발휘한다. 식물학자 안데르손이 붙인 버드나무의 학명인 `살릭스(Salix)`에 이런 특성이 담겨 있다. 켈트어인 `살(sal)`은 `가깝다`, `리스(lis)`는 물을 각각 의미한다. 버드나무 뿌리는 상처가 나도 쉽게 아물고, 서로 촘촘하게 엉켜 있어 땅을 지지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선조들이 수해를 예방하기 위해 하천, 강변 등에 버드나무를 많이 심은 이유다.

세계 경기 침체의 파고 속에서 글로벌 경쟁력 확보라는 숙제를 안고 있는 국내 제조업계에도 버드나무와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 산업이 있다. 모든 제조업의 기반이 되는 기초 공정산업으로, 완제품의 품질 경쟁력을 좌우하는 `뿌리산업`이다. 뿌리산업은 주조·금형·소성가공·용접·열처리·표면처리 등 천연 자원을 소재로, 소재를 부품으로 생산하는 데 필요한 공정 기술을 의미한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국가 주력산업 호조에 힘입어 2년 연속 무역 규모 1조달러를 달성하며 세계 무역 8강에 진입했다. 뿌리산업이 약진한 덕분이다. 뿌리산업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자동차, 조선 산업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평균 2만5000개의 부품으로 구성되는 자동차는 중량의 86%가 뿌리기술로 구현된다. 조선 산업에서 선박 한 척을 건조하는 데 드는 용접 비용은 무려 전체 건조비의 35%에 이른다. 뿌리산업이 제조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지목되는 이유다.

그러나 뿌리산업은 생산 업체의 대다수가 영세 중소기업으로 이루어진 탓에 3D산업이란 인식이 강하다. 젊은 인력 수급에 곤란을 겪고,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핵심 기술의 맥이 끊기는 것도 예사다.

정부가 뿌리산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해 관련 기업을 육성하고 국가 주력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제정한 `뿌리산업 진흥과 첨단화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도 1년이 지났다. 정부는 지난해 관련 기업 육성, 산업기반 구축 등 뿌리산업 지원을 총괄할 `국가 뿌리산업진흥센터`를 출범시켰다. 최근 뿌리산업 진흥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제조업의 근간인 뿌리산업과 주력산업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국내 제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한층 키우기 위해서는 뿌리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이 절실하다. 버드나무가 강한 생명력을 가진 것은 뿌리가 튼튼한 덕분이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구름이 몰려와도 뿌리만 튼튼하다면 근심할 이유가 없다.

서병문 중소기업중앙회 수석부회장 겸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 이사장 kfcasm1@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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