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한 애플 협력사 사장을 만났다. 2년 전만해도 “애플과 거래 했더니 초기 투자 비용을 통장에 직접 넣어주고 수익률까지 챙겨주는 회사”라며 치켜세우던 사람이다. 그가 요즘 다른 말을 한다. 애플이 완전히 변했다는 것이다.
애플은 최고의 품질을 요구하는 대신 협력사에게 일정정도 수익률을 보장해준다고 정평이 났다. 이런 회사가 최근 협력사를 다변화하고 가격으로 압박한다. 스티브잡스가 세상을 떠난 이후 창의성이 사라진 애플로선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까지 잠식당하는 상황에서 나온 자구책일 수 있다. 하지만 공급망관리(SCM) 전문가인 팀 쿡 최고경영자(CEO)와 무관하지 않다.
애플이 일부 벤치마킹한다는 분석도 있을 정도로 삼성전자는 협력사를 철저히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독점 공급 계약은 물론이고 분기별로 납품 단가를 협상한다. 협력사들은 눈치를 본다. 실적이 좋더라도 공개하기를 꺼린다. 이익률이 좋으면 곧바로 단가 인하 압력을 받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지난해부터 협력사에 종전보다 더 강도 높은 압박 정책을 쓴다는 얘기가 들린다. 최근 한 중소 협력사는 `입조심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품 공급을 하지 못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애플과 삼성전자의 후방에 부품·소재 협력사들이 대거 포진했다. 나아가 스마트 기기 시장 생태계의 일원이다. 스마트폰 시장 양강 구도는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경쟁자가 없는 상황에서 삼성과 애플 밑에 헤쳐 모인 협력사로선 지금 같은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고생이 이어질 것이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철저한 공급망 관리 정책도 일면 수긍할 만하다. 당장의 일전에서 이기지 못하면 순식간에 추월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이해한다. 하지만 눈앞의 싸움에 급급해 전체 생태계를 압박하는 정책은 두 회사 모두 장기적인 성장에 도움 되지 않을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최우선 조건은 원활한 보급이다. 보급을 담당하는 협력사가 없으면 세트 역시 없다. 몇 년 전 “다시는 IT 업계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떠난 한 중소기업 사장의 말을 요즘들어 자꾸 곱씹게 된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