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정의 어울통신]삼고초려(三顧草廬)의 정치학

천하제패의 꿈을 가진 유비는 제갈량을 얻기 위해 남양(南陽)이라는 작은 마을의 초가집을 세 번이나 찾았다. 바로 삼고초려(三顧草廬)다. 그만큼 자신의 야망을 펼쳐줄 유능한 인재를 위해서라면 온 정성과 예를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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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재능으로 보면 제갈량, 관우, 장비, 조운에 비해 어느 것 하나 나을 게 없는 퇴락한 황손일 뿐이었다. 국가 경영능력이나 지략·지모 등에서라면 제갈량에 한참 못 미쳤고, 용맹함에 있어서도 관우, 장비, 조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천하삼분지계의 상대인 위나 오의 군주에 비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사람을 부리거나 전쟁 수행 능력에서 조조·손권에 비해 족탈불급(足脫不及)이었다.

그런 그가 난세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무엇보다 그는 탁월한 덕성과 재목을 볼 줄 아는 안목의 소유자였다. 인재 앞에서는 특히 자신을 한없이 낮출 줄 알았다. 진심어린 예도 갖췄으며 인내심도 발휘했다. 오죽하면 제갈량을 얻고 난 뒤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격(水魚之交)이라고까지 했겠는가. 삼고초려는 그래서 현대 정치인들까지 가장 즐겨 쓰는 고사성어가 됐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이번 주 출범했다. 일정대로라면 이번 주, 늦어도 다음 주에는 정부 조직개편 밑그림이 나올 듯하다. 물론 이미 공약한 미래창조과학부 등 부처 신설을 포함한 부처개편과 함께 내각과 청와대 인선 작업도 본격화한다.

인수위 인사에 관심이 쏠렸던 이유이기도 하다. 조각의 바로미터란 얘기다. 인수위는 일단 측근 정치인은 최대한 배제하고 전문가 중심의 인사들을 전진 배치했다. 대선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당선인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들을 낙점했다는 것이다.

내각 수장인 총리 인선이 일차적 관심사다. 총리는 일단 국민대통합·경제통·개혁성이 핵심 포인트라고 한다. 한 가지 더 있다. 전문성은 기본이고 작금의 글로벌 경쟁시대, 기술융합시대, 디지털경제사회, 미래 정보문명을 앞장서 개척해 나갈 미래지향적 인사여야 한다. 내각을 이끌 장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친박·대선캠프 등 측근 정치인의 입각 얘기가 여전히 인수위 주변을 맴돈다. 한 자리 꿰차겠다는 인사들도 넘쳐난다. 정치인을 배제하겠다는 당선인의 구상이 조각과정에서 얼마나 지켜질지 의문스럽다.

이쯤에서 유비의 정치학을 한번 음미해볼 만하다.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이나 유능한 인재를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줄 아는 유비의 정치적 통찰력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가신을 버림으로써 또 다른 가신을 얻는 지혜를 배우라는 것이다. 버림으로써 얻게 되는 이치와도 일맥상통한다.

제갈량은 어떠했는가. 실제 관우·장비 등 최측근조차 그의 영입을 반대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국가에 공헌한 자는 원수라 할지라도 포상을 했고, 법을 어기고 태만한 자는 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처벌했다. 선은 아무리 작더라도 칭찬을 했고, 악은 아무리 작더라도 벌했다. 형벌이 준엄한 데도 원망한 자가 없었던 것은 그 마음 씀이 공평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정권 획득을 위한 인재와 치국을 할 수 있는 인재를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충신과 간신도 구분해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논공행상이란 단어 역시 내려놓을 때도 됐다. 당선인의 정치 철학과도 배치된다.

우리 주변에도 때를 기다리는 숨은 인재들이 많다. 이제는 그런 큰 뜻을 품은 초야의 유능한 인재들을 귀하게 초빙해야 할 차례다. 개인 영달이 아닌 진심으로 당선인의 정치철학을 펼칠 그런 산·학·관 각 분야의 제갈량을 위해 삼고초려도 기꺼이 감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박승정 정보사회총괄 부국장 sj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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