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기인의 삶과 꿈] 황유경 목암생명공학연구소 연구위원

목암생명공학연구소에 입사한지 22년이 지났다. 이곳에서 일하며 결혼하고 두 아이 엄마가 되었고 박사학위 과정을 마쳤다. 포스터닥터 과정(박사 후 과정)을 위해 잠시 미국 다녀왔다. 팀장으로 복귀해 면역학을 기반으로 하는 신약을 개발한답시고 기쁨과 좌절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연구원 생활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내 프로젝트가 임상에 진입하는 희열을 맛보기까지 목암연구소는 내 첫 직장이자 나를 성장시켜준 가장 큰 도전의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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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절을 돌이켜 보면 무엇보다 고단했던 시기는 연구소 근무한지 10년째, 만 34살에 다시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박사학위를 할 때였다. 학교를 떠난 지 10년이 되니 연구원이란 직업을 가지고 매일 공부를 하는데도 머리속이 자꾸 비어가는 것 같았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과 유치원 다니는 아들을 돌보며 회사와 학교를 오가는 날이 시작됐다. 바쁜 남편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던 시절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 나아가 자기 발전을 위해 학위 과정까지 병행해야 했던 시기는 돌이켜 보아도 전쟁의 연속이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온 아이들은 낮 동안 밀린 엄마 사랑을 다 채우기 전에는 놓아 주지 않았다. 밀린 집안일에 봐야 할 논문은 매일 불어나 금방 산더미가 됐다.

당시 내게 탈출구는 딱 두 가지였다. 애들 다 재우고 난 밤 시간에, 아파트 바로 옆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에 나가서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는 오기로 운동장 열 바퀴를 뛰는 것. 집에 돌아와 베란다에 나가서 키우던 화분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잠시 위안을 얻는 것. 그러면 설거지를 할 힘도, 논문을 볼 힘도 다시 생겼다. 다행히 물리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했던 남편은 내가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나갈 수 있도록 가끔 격려의 메시지를 잊지 않고 보내 줬다.

돌이켜 보면 나만 그런 시기를 보낸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땅의 많은 일하는 엄마가 다 이겨내야 하는 성장통 같은 시기다. 어린 자녀를 키우며 연구원으로 살아가기는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다. 이 힘든 시기가 가져다 준 선물이 있었다. 이 시간을 보낸 후 나는 내가 훌쩍 커져 있다. 웬만한 큰 일이 닥쳐도 별 두려움 없이 해 내겠다는 배포가 생겼다. 성장이란 어느 정도 감당하기 버거운 수준의 무게로 일정기간 계속된 수련을 마쳤을 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닌가.

학교를 떠나 직장인으로 또 가정에서 어른으로 살아가며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배운다. 배움을 즐기고 성장하는 기쁨을 맛보려면 어느 정도 고통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너무 힘들어 내가 굴복 당하지 않게 적절한 도움을 받으라고 권하고 싶고, 자기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하나 이상씩 개발해서 잘 사용하길 바란다. 이 힘든 시기 언젠가 지나갈 것이고, 우리는 활개를 치고 꿈을 펼칠 그 날을 맞게 될 것이니까.

황유경 목암생명공학연구소 연구위원(ykhwang@moga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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