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車 `시트로앵`은 개성 넘치는 디자인, 유수의 명차를 배출한 역사, 첨단 기술 등 많은 이야기를 가진 자동차 브랜드다.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자동차 경주다. 랠리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에서 `시트로앵 레이싱`팀은 올해 10월에 이미 8번째 챔피언을 확정지었다. 동시에 시트로앵 랠리 카를 운전해온 세바스티앙 로브와 그의 파트너 다니엘 엘레나는 9년 연속 월드 랠리 챔피언을 거머쥐는 대기록을 세웠다. 현재 이들의 랠리 카는 2011년부터 WRC 새 규정에 따라 투입되기 시작한 시트로앵 DS3다.
DS3는 올해 4월 시트로앵 브랜드의 국내 공식 진출과 함께 첨병으로 나선 모델이다. 아담한 크기에 깜찍한 디자인, 예쁜 색상으로 여심을 빼앗는 것이 이 차의 이미지였던 탓에 산 넘고 물 건너 수 미터를 점프하고 빙판 위를 질주하는 랠리 카의 모습이 쉽게 겹쳐지진 않는다. DS3 월드 랠리 카는 1.6리터 가솔린 직분사 엔진으로 300마력 이상의 괴력을 뽑아내는 4륜구동 경주용 차. 그에 비해 국내에서 판매 중인 양산 차는 1.4, 1.6리터 가솔린 및 디젤 엔진을 탑재해 68∼120마력의 힘을 내는 앞바퀴 굴림 소형차일 뿐이다.
그래서 이번에 시승한 DS3 `레이싱(Racing)`은 랠리에서의 선전을 마케팅에 활용하기로 작정한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바탕이 된 것은 유럽에서 판매하는 156마력 가솔린 터보 엔진의 DS3인데, 이를 앞서 말한 `시트로앵 레이싱`에서 손봤다. 엔진과 터보, 배기 장치를 개량해 출력을 200마력으로 높였고, 토크 또한 15% 상승시켰다. 넓은 회전 영역에서 솟구치는 힘이 작고 가벼운 차체를 언제고 유연하게 튀어나가도록 만든다. 변속기는 수입차에서 보기 드문 6단 수동. 묵직하고 절도 있게 각 단을 찾아 들어가는 손맛이 제법이다. 페달과 기어를 적시적소에 넣을 수만 있다면 정지 상태에서 시속100㎞까지 가속하는 데 6.5초, 1000m 지점을 통과하는 데는 27초가 걸린다. 최고시속은 230㎞를 상회하지만, 이 차의 재미는 어디까지나 그 절반 이하의 속도 영역에 있는 듯하다.
외관은 경주용 차를 연상시킨다. 검정색 차체에 지붕과 그릴, 사이드미러와 휠 등은 오렌지색으로 대비시켰고, 요란한 스티커들을 곳곳에 붙였다. 아래쪽은 카본 파이버로 장식했다. 일반 DS3보다 튀어나온 휠 아치는 30㎜ 확장된 이 차의 윤거와 바퀴 사이즈를 반영한 것이다. 높아진 동력 성능에 맞게 전용 조향 장치와 서스펜션 설정, 강화된 브레이크를 적용한 결과, 차의 크기를 훌쩍 뛰어넘는 듬직함과 날카로움이 느껴진다. 검정색과 오렌지색의 대비 그리고 카본 장식의 조화는 실내에도 이어진다. 측면이 높은 스포츠시트가 과감한 주행을 부추긴다. 감추듯이 새겨놓은 엔진 커버와 천장 명판의 `WORLD RALLY CHAMPION` 문구는 조금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하긴, 전 세계 1000대 한정으로 나온 이 차를, 오랜 해치백 불모지요 수동변속기 멸종 단계인 우리나라에서 아시아 시장 중 유일하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부터 감동적이긴 하다. 그렇게 보면, 이 차가 벨로스터 터보와 같은 배기량, 엇비슷한 엔진 성능을 가졌고 차체는 한 치수 더 작으면서도 두 배에 해당하는 몸값을 제시하고 있는 데도 국내 물량으로 배정된 다섯 대의 계약이 이미 끝났다는 사실은 일견 이해가 간다. 특히 두 차를 직접 타보고 비교해보면, 감동의 깊이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점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민병권기자 bkmin@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