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업계가 고사할 위기에 처했다. 최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 모두 신규 투자가 실종된 데다 내년도 암담한 상황이어서 `살아남는 것이 최선`인 지경에 몰리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기업은 올 들어 참담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는 연초 기대했던 투자가 예정대로 집행된 것이 거의 없다. 지난해 미뤄졌던 LG디스플레이의 P98라인 투자가 마무리된 정도다. 장비업계가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삼성디스플레이의 신규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 OLED) 라인 투자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동안 대부분 납기 일정을 감안해 견적서를 받거나 구매 의향을 먼저 전하고, 한두 달 후 발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연기가 거듭되면서 이제는 구매의향을 전달받아도 투자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미 계속 연기됐던 국내 LCD 패널 업체들의 중국 투자는 조만간 가시화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투자 규모는 최소한이 될 것으로 보인다.
디스플레이 시장의 투자 침체는 상반기까지만 해도 반도체 시장에서 보완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경기도 화성에 신규 시스템 반도체 라인 S3 건설을 발표하며, 반도체 장비 업계에 화색이 만연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중단됐다.
장비업계가 새로운 시장으로 준비해왔던 태양광 사업은 중국 저가 물량 공세와 수요부족을 견디지 못해 이미 얼어붙은 지 오래다.
내년 세계 디스플레이 장비 시장은 올해보다 두 배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에도, 국내 기업들의 걱정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NPD디스플레이서치는 내년 중국 투자와 저온폴리실리콘(LTPS) 투자 등 기술 업그레이드에 힘입어 121%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중국이 공을 들이는 AM OLED 시장에서 국내 장비 기업의 수주 성적은 제로다. 국내 패널 기업과 공동 개발한 장비를 수출할 수 없는 규제 탓이다.
이에 따라 국내 장비 업체의 주가도 최근 바닥에서 허덕이고 있다. 케이씨텍·주성엔지니어링·엘아이지에이디피·에스에프에이·AP시스템·에스엔유프리시젼 등 상당수 장비 기업의 주가는 지난 3개월간 20~30%가량 떨어졌다. 매출은 전년대비 40~70%가 줄었다. 최대 매출을 기록해 온 세메스는 생존을 위해 삼성전자의 또 다른 자회사인 세크론·지이에스와 합병하기로 했다.
지난해부터 LCD 장비업계에 먼저 불어 닥쳤던 구조조정 바람이 전 장비업계로 확산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한 장비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버티는 것이 미션”이라며 “우선은 살아남기 위해 구조조정을 감내해야 할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