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키나 산 드리프트 유령의 환생인 86을 독일의 폐쇄된 공항과 아우토반에서 시승한 다음 날, 쾰른에 위치한 글로벌 도요타 모터스포츠의 본산인 TMG (TOYOTA Motorsport Gmbh)를 방문했다.
모터스포츠의 팬이라면 도요타가 셀리카, 랠리카로 비포장 길을 누비며 43차례 우승을 일궈냈던 WRC에서의 활약을 기억할 것이다. 그 주역은 카를로스 사인즈, 디디에 아우리올, 유하 칸쿠넨 등이었다. 그 후 1998년과 1999년에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를 달궜던 빨간 GT-1 레이싱카도 아직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1999년 레이스에서 폴 포지션을 따냈던 1번 머신은 타이어 펑크로 아쉽게 우승을 놓치고, 3번 머신이 2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거뒀다.
2002년 도요타는 F1에 과감하게 도전했다. 티모 글락, 야노 트룰리, 랄프 슈마허 등이 도요타 팀에서 활약했고, 비록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13번 포디움에 오르는 약진을 선보였다. 이 후 F1에서 철수한 도요타는 FIA WEC (세계 내구 챔피언십)과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 등에서 활약하고 있고, 최근 WRC 복귀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도요타의 이 모든 모터스포츠에서의 활약 뒤에는 TMG가 있었다.
1979년 설립된 TMG에는 현재 3만 평방미터 규모의 넓은 부지에 풍동 실험실, 섀시 워크숍, 엔진 디자인실 등을 포함한 첨단 연구, 개발 시설과 테스트 설비를 갖추고 15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부지 내에 도요타 모터스포츠 박물관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도요타의 모터 스포츠 역사와 TMG의 첨단 설비, 최근의 모터스포츠 성과 등을 알아 본 후 먼저 도요타 모터스포츠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을 견학했다. 그 동안 사진으로만 봐 왔던 그 옛날의 WRC카들과 새빨간 르망 GT1 레이스카들, 그리고 10여 대에 이르는 F1 머신들까지 한 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F1 머신에 장착됐던 엔진들도 드라이버의 밀납인형과 함께 전시돼 있었다. 그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코를 자극하는 매캐한 타이어 냄새와 고막을 찢을 듯한 엔진 굉음이 금방이라도 현실이 되어 쏟아질 듯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 다음에는 섀시 워크숍을 방문해 도요타의 최신 스포츠카인 86을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 GT2 클래스에 적합하도록 개조한 모델을 살펴보고 그 개조 과정을 견학했다. 이 튜닝 86은 9월 중순 독일에서 판매를 시작해서 약 77대 판매가 이루어져 현재 개조 작업이 한창이라고 한다. 양산형 모델만으로도 높은 잠재력을 갖춘 86답게 어렵지 않게 성능 보강 및 향상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에 출전한 TS030 LMP1 레이싱카도 만나 봤다. 최첨단, 최고 성능의 레이싱카가 겨루는 LMP1 클래스에서 강력한 라이벌인 디젤 레이싱카들을 앞질러 선두로 달리던 중 아찔한 사고로 결국 레이스를 포기해야만 했지만 하이브리드 레이싱카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주었던 TS030의 위용은 화려한 은빛으로 빛났다.
TS030 하이브리드 레이싱카는 카본파이버로 제작된 섀시에 530마력을 발휘하는 3.4리터 V8 가솔린 엔진과 300마력을 발휘하는 전기 모터가 장착되었으며, 500kJ 용량의 배터리와 에너지 회생 제동 시스템, 초경량 부품 등 첨단 기술이 대거 적용됐다.
내년 여름, 뜨거운 르망의 밤을 달굴 도요타 하이브리드 레이싱카의 재도전과, 조만간 흙먼지와 함께 미끄러지며 질주할 WRC에서의 도요타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박기돈 기자 nodikar@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