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친환경 시장 `에코디자인`이 연다<4회>환경경제효율을 높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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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회사가 만든 TV는 화질이 떨어지지만 에코디자인을 적용한 고효율 제품이다. B회사의 TV는 친환경 제조기법을 적용하지 않았고 전력소비 효율도 낮지만 화질은 뛰어나다. 소비자들은 어떤 회사의 제품을 선택할까.

[특별기획]친환경 시장 `에코디자인`이 연다<4회>환경경제효율을 높여라

제품의 성능과 친환경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소비자에게 이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만약 두 요소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점수를 보여준다면 이런 고민은 없어질 것이다. 여기에서 유용한 개념이 바로 환경경제효율(Eco-Efficiency)이다.

◇환경경제효율이란

친환경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라고 해서 제품을 살 때 고효율·친환경성을 유일한 의사결정 기준으로 삼지는 않는다. 친환경 요소는 성능·편의성·가격 등 다른 경쟁요소와 대립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의 마음을 끌어내기 위해 기업들은 다양한 경쟁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평가기법이 필요하며, 여기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개념이 환경경제효율이다.

환경경제효율은 쉽게 말 해 제품·서비스의 가치를 환경영향으로 나눈 값이다. 결국 기업은 `분자`인 제품·서비스의 가치를 높이거나 `분모`인 환경영향을 낮춰 환경경제효율을 높일 수 있다. 제품·서비스의 가치와 환경영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이를 도입하는 기업, 국가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한 TV 제조업체는 화질을 주요 제품·서비스 가치라고 생각하는 반면 다른 업체는 무게·두께 등을 중요한 가치라고 판단할 수 있다.

지식경제부의 `제품 환경경제효율 평가방법 표준화` 보고서에 따르면 환경경제효율에 대한 정의는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세계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WBCSD)가 제시한 근본적인 개념과 유사하다. WBCSD는 환경경제효율을 `인류의 욕구와 생활의 질을 만족시킬 수 있는 시장 재화와 용역의 제공을 포함하며, 라이프사이클(전과정)을 통해 제품의 생태영향과 자원 집약도를 최소한 자국의 추정 포용능력에 맞는 수준까지 전향적으로 감소시키는 것`으로 정의했다.

환경경제효율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일정 기간 후 얼마나 개선됐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동반돼야 활용 가치가 높아진다. 이를 위해서는 평가시점의 수치를 기존 수치와 비교해야 한다. 평가시점의 환경경제효율 수치를 기존 환경경제효율 수치로 나눈 값을 팩터(Factor)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어떤 제품에 대해 10년 내 `팩터 4`를 달성한다는 목표는 10년간 환경경제효율을 4배 높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과 국가는 환경성과 경제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목표를 설정해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환경경제효율을 활용할 수 있다. 한 예로 일본 도시바는 2000년 대비 올해까지 제품 환경경제효율을 2.55배, 경영프로세스 환경경제효율을 1.3배 높여 궁극적으로 전사적 환경경제효율을 2.3배 높인다는 비전을 밝힌 바 있다. 이외에도 기업은 새롭게 제품이나 기술을 개발하고자 할 때 환경경제효율을 분석해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고, 관련 활동을 통해 직간접적인 친환경 이미지 제고도 가능하다.

엄정웅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연구원은 “환경경제효율은 제품의 가치와 환경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고, 단일한 수치로 표현해 제품 간 비교가 간편하며 소비자에게 인지되기 쉽다”며 “고효율·친환경 전자제품 관련 정책과 수요가 점차 확대될 것으로 예상돼 환경경제효율의 활용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경제효율 활용 `개성따라`

기업에 따라 환경경제효율의 구체적인 산정방법은 조금씩 차이가 있고, 이에 따라 장단점도 다르게 평가된다.

예를 들어 대만 AUO와 일본 파나소닉의 방식은 비교적 간편하고 객관적이지만 온실가스 외에 다른 환경영향을 고려하기가 어렵다는 부분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우리나라 SK하이닉스와 일본 도시바의 방식은 다양한 성능과 환경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지만 산정방법이 비교적 복잡하고, 가중치를 적용하기 때문에 수치의 객관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08년부터 사업부 성과측정과 그린 마케팅을 목적으로 자체적으로 제품 환경경제효율 지수를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선도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SK하이닉스는 제품 평가 시 △제품성능(데이터 저장능력, 데이터 처리속도, 사용전압) △투입물질(웨이퍼, 화학물질, 용수, 가스, 금속, 플라스틱) △온실가스 배출량(전력소비 등) △유해물질(전기전자제품 유해물질 사용제한(RoHS) 관련) 등의 요소를 고려한다.

2008년 제품 환경경제효율을 기준으로 2015년까지 팩터 5(2008년 대비 환경경제효율 5배 향상) 달성을 목표로 하는 `팩터 로드맵`을 수립했으며, 팩터 값을 지속 모니터링 해 제품 R&D 전략에 반영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SK하이닉스는 팩터 3.39를 달성했다.

AUO는 최근 46인치 TFT-LCD 패널과 태양광 모듈에 대해 ISO14045 표준에 근거한 환경경제효율 평가를 수행했다. TFT-LCD 패널은 전력소비, 응답속도, 전과정 온실가스 배출량을 고려했다. 태양광 모듈은 최대전력출력, 변환효율, 전과정 온실가스 배출량을 고려했다.

도시바는 보다 광범위한 제품가치와 환경부하를 고려하기 위해 품질기능전개(QFD) 기법과 LIME(Life-cycle Impact assessment Method based on Endpoint modeling) 접근을 활용하고 있다. QFD는 소비자의 요구에 대응하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마케팅, 설계, 생산, 구매, 영업 등 각 부서에서 요구되는 사항을 제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분석·정리해 제품 설계 사양을 도출하는 기법으로, 소비자들이 성능을 체감하는 정도까지 고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LIME은 전과정 에너지소비량, 자원소비량, 오염물질 배출량 등 다양한 환경부하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환경영향평가기법이다.

기관별 환경경제효율 정의(자료=제품의 환경경제효율지표 가이드라인 개발 및 활용방안 연구)

◆소박스/환경경제효율의 표준화 동향

환경경제효율의 표준화를 위해 독일·일본 등 선진국은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표준화에 있어 아직 기업·정부 차원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지식경제부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부퍼탈연구소는 MIPS(Material Input Per Service Unit)를 활용해 환경경제효율 산정 방법론을 개발했다. MIPS는 제품이나 서비스 단위의 기능 대비 자원사용량을 측정하는 것으로, MIPS의 감소는 자원 생산성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팩터의 개념을 개발한 것도 부퍼탈연구소다.

일본의 산업환경관리협회(JEMAI)는 워킹그룹을 구성해 제품 수준이 아닌 산업 수준의 환경경제효율 표준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지난 2005년 연구 결과물로 정보통신산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간하기도 했다. JEMAI는 부퍼탈연구소에서 제안한 팩터를 개별 제품의 환경경제효율 산정을 위한 방법론으로 개별 기업의 특성에 맞게 수정해 활용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산업 수준에서의 환경경제효율 산정과 활용을 위한 방법론의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사업의 일환으로 한 업체에 네덜란드·프랑스의 화학·금속산업에 대한 환경경제효율 산정을 위한 방법론 개발을 의뢰해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기도 했다.

캐나다의 환경·경제회의인 NRTEE는 환경경제효율 산정 방법과 보고를 위한 개념과 의사결정 규칙을 표준화 하는 사업을 수행했다. 이를 위해 WBCSD에 의해 수행된 환경경제효율 산정 원칙과 체계에 근거해 참여 기업을 대상으로 에너지, 폐기물, 용수 집약도 지표에 대한 개념과 의사결정 규칙을 개발하고 기업 수준의 표준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인터뷰/김종대 인하대학교 경영학부 교수(인하대학교 지속가능경영연구소장)

“우리나라 기업과 정부 모두 환경경제효율을 더욱 적극 도입해야 합니다.”

김종대 인하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 기업과 정부가 다른 나라에 비해 환경경제효율 도입에 비교적 소극적이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기업의 경우 시범사업에는 많이 참여하지만 직접 경영에 도입해 활용하는 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SK하이닉스 등 소수 업체 외에는 대부분 환경경제효율을 도입하지 않은 반면, 해외에서는 바스프·파나소닉·도시바·후지쯔 등 유수 업체들이 적극 활용하고 있다.

김 교수는 “국내 기업은 바스프, 파나소닉과 같은 업체보다 환경영향의 중요성에 대한 인지가 부족한 편”이라며 “이런 부분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요구가 낮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수출 위주의 국내 업체들도 대부분 시장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건만 충족시키고 있어 환경영향이 항상 `규제`로 인식된다는 게 김 교수 생각이다. 생각을 바꿔 환경경제효율을 적극 도입하면 대내적으로는 환경관리지표로 활용할 수 있고, 대외적으로는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등 다양한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차원의 환경경제효율 활용은 몇 년 전만해도 논의가 활발했지만 지금은 흐지부지 돼 버린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주요 산업군의 환경경제효율을 2015년까지 4배 높이는 `2015 팩터 4`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 교수는 “대형 프로젝트인 만큼 정부 차원의 추진이 쉽지 않을 수는 있지만 마음을 먹으면 충분히 가능하고 그만큼 중요한 사업”이라며 “정부가 중요 정책으로 환경경제효율 목표를 설정하고 주요 산업별로 순차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 경영 전반에 있어 환경의 가치를 중요시 해야하는 이유는 `생존의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과 같은 형태로 생산과 소비가 확대되면 자연이 파괴돼 성장이 멈추고 결국 체제가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기업은 필연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영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속가능경영은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 전략”이라며 “사람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갈수록 많이 알게 되고 그만큼 기업에 강한 압력을 넣을 것이기 때문에 이를 따라가지 않으면 성장은 물론 생존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