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 비사]<109>기술쾌거, 세계 10번째

TDX-기술쾌거, 세계 10번째

TDX 개발은 국가 명운(命運)이 걸린 중대사였다.

한국전기통신연구소(현 ETRI)는 1983년 1월 말부터 일주일간 대덕연구단지 내 새 건물로 이사했다. 기혼자들은 사택에서, 미혼자들은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처음 26명에 불과하던 개발단 연구원을 계속 증원했다. 국방과학연구소(ADD)출신 연구원 60여명을 충원한데 이공계 대학 졸업생 중에서 신규 인력을 선발했다. 이들은 5년간 연구소에서 근무하면 병역을 면제받는 병역특례자들이었다.

양승택 TDX개발단장(정통부 장관 역임, 현 IST컨소시엄 대표)은 그해 1월 소프트웨어개발연구실을 신설했다. 소프트웨어의 체계적인 개발과 관리를 위해서였다. 실장에는 천유식 박사(현 한국머털테크 대표)를 임명했다. 그는 114전화안내 전산시스템개발 책임자로 그 일을 막 끝낸 뒤였다. 양 단장은 매주 회의를 열어 현안을 챙기면서 개발을 독려했다.

그해 2월 10일.

체신부는 전두환 대통령에게 농어촌 전자교환기종으로 에릭슨의 AXE-10기종을 도입하겠다고 보고했다. 체신부는 농어촌 전자교환기는 국내에서 개발 생산하는 기종을 표준화해 사용하며 양산할 때까지만 외국기종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전 대통령은 보고서에 “교환기를 국산화해 체신부 계획에 따라 공급하라”는 친필 메모를 적어 체신부로 내려 보냈다.

그해 4월 12일 오후

전두환 대통령이 한국전기통신연구소를 시찰했다. 전 대통령은 백영학(과기처 기획관리실장, 국립과학관장 역임) 소장으로부터 주요 기술개발현황을 보고받고 전자식교환기와 디지털광통신시스템, 비디오텍스시스템 등 연구개발 전시품을 둘러보았다.

이날 제1연구동 2층에 설치한 TDX-1X시험기 앞에서 개발상황을 브리핑했던 박항구 부장(TDX개발단장 역임, 현 소암시스텔 회장)은 담뱃갑으로 인해 크게 놀란 케이스.

박항구 부장의 회고.

“제가 보고자로 결정되자 경호관이 `대통령과 악수할 때는 손을 살짝 잡으라`고 주의를 주더군요. 브리핑 5분 전에 경호관이 다시 와서 현장을 점검하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제 왼쪽 가슴 쪽을 꽉 잡는 게 아닙니까. 깜짝 놀랐어요. 담뱃갑을 양복상의 안쪽 주머니에 넣었는데 그게 불록하게 튀어 나온 게 화근이었요. 얼마 놀랐는지, 반쯤 얼이 나갔어요.”

전 대통령은 10여분간 브리핑을 받고 `수고 했다`고 그를 격려하고 떠났다.

전 대통령은 이날 연구소에 격려금으로 100만원을 주었다. 이 돈은 나중에 연구소 당구대 구입비로 사용했다.

그해 5월 31일.

그동안 시험 운영하던 송전우체국의 TDX-1의 현장시험이 끝났다.

연구소는 시험이 성공했다고 결론 내렸다. 이후 운영은 한국전기통신공사에서 맡았다.

그해 11월 22일 오전 10시.

전두환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3회 기술진흥확대보고회의가 열렸다.

김성진 체신부 장관은 통신기술진흥시책보고를 통해 “기술수요제와 구매보장 및 품질 보증제를 실시하고 전자교환기개발에 240억원을 투입해 1986년부터 전자교환기를 농어촌에 확대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1984년 1월 13일 TDX사업단장 겸 품질보증단장으로 서정욱 단장(과기처 차관, 장관 역임)이 취임하면서 이른바 `TDX전쟁론`이 등장했다. TDX개발은 전쟁과 같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흔한 현판식조차 하지 않았다. ADD소장 출신인 서 단장의 리더십은 목표가 확실했다. 서 단장은 TDX사업에 시스템 공학적으로 접근했다. 서 단장은 치밀함과 강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보고서 대신 현장 제일주의를 실천했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국을 누비며 현장을 확인했고 잘못된 곳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일에 관한한 그는 `독종`으로 불렸지만 그것은 사익(私益)이 아닌 국가이익을 위한 일이었다. 서 단장은 국내 처음으로 품질보증체계를 확립했다. 이는 국내 품질보증체계의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1984년 4월 25일.

충남 대전 서대전우체국에서 국내 개발 전자교환기(TDX-1) 개통식이 열렸다.

개통식에는 김성진 체신부 장관과 이우재 한국전기통신공사 사장(체신부 장관 역임), 백영학 한국전기통신연구소장, 윤동윤 체신부 정책국장(체신부 장관 역임, 현 IT 리더스포럼회장) 서정욱 TDX 사업단장, 양승택 TDX 개발단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개통한 전자교환기는 2500회선의 모국용이며 유선분국에도 500회선 분국용 교환기를 설치 운영했다.

서정욱 TDX사업단장은 이 제품을 `TDX-1시험 인증기`라고 명명했다.

서 단장의 증언.

“나는 통신공사와 연구소, 생산업체 참여자들이 국설 교환기의 연구, 개발, 시험평가, 품질보증,교육 훈련 등을 체험하게 하고 사업관리의 기번을 터득하는 교육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그해 6월 21일.

전자통신개발추진위원회는 TDX-1개발참여업체를 선정했다. 전자공업진흥회 추전을 받아 기존 금성반도체와 동양정밀, 삼성반도체통신 등 3개사 외에 대우통신을 추가했다.

당시 체신부 통신정책국장으로 대우통신을 참여시켰던 윤동윤 전 체신부 장관(현 한국IT리더스포럼 회장)의 회고.

“기존 금성반도체와 동양정밀, 삼성반도체통신 등 생산 3사는 개발 시늉만 할 뿐 전혀 진전이 없었어요. 그들로서는 개발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어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생산 3사 대표를 체신부로 불렀습니다. `TDX개발은 꼭 성공해야 할 국가전략사업이다. 모든 업체들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설 용이건 구내용이건 교환기를 생산하는 업체는 모두 TDX개발에 참여시키겠다`고 했더니 3사가 모두 기득권을 내세워 반대했습니다. 계속 반대하면 실용시험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대우통신을 참여시켜 업체 간 개발경쟁을 유도했습니다.”

그해 7월 20일.

임기가 만료된 백영학 소장 후임에 경상현 박사(정통부 장관 역임, 현 KAIST 겸직교수)가 취임했다. 그는 한국전기통신연구소 선임연구부장과 TDX개발단장으로 일하다 한국전기통신공사 부사장을 거쳐 친정인 연구소 소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해 8월 29일.

한국전자통신연구소는 교환기 생산 4사로 지정된 대우통신과 금성반도체, 동양정밀, 삼성반도체통신 등과 TX-1개발 기본협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에 따라 연구소는 그해 12월 말까지 TDX-1시험생산에 필요한 시스템 설계기술과 하드웨어 기술, 소프트웨어 기술 등 원천설계 기술과 국설계 기술과 시험기술, 유지보수기술, 제조기술을 4사에 전수했다.

양승택 단장의 기억.

“막상 기술전수를 시작하니 업체의 생산과 설계 수준이 말이 아니었다. 설계된 기판 필름까지도 연구소에서 만들어 보내 줘야 할 정도였다. 업체 연구원 교육은 대전에서 실시했는데 이들은 기술전수에 최선을 다했다.”

체신부는 생산 4사별로 추첨을 통해 상용시험지역을 배정했다. 삼성은 경기 가평, 금성은 경기 전곡, 대우는 경북 고령, 동양은 전북 무주에 자사 제품을 설치해 시스템과 연동시험을 시작했다.

그해 9월 3일 2차 실용기 인증시험이 끝났다. 그런데 70여개 항목에서 불합격을 받았다.

양승택 단장의 증언.

“결과를 `그대로 발표하느냐`고 연구원들이 네게 물었다. 나는 `실용시험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해야 좋은 상품제품이 나올 수 있으니 그대로 발표하라`고 지시했다.”

이로 인해 한바탕 후폭풍이 불었다. 불합격을 그냥 넘길 서정욱 단장이 아니었다.

서 단장은 9월 7일 오후 대전으로 내려와 개발단을 강당에 집합시켜 놓고 이우재 사장의 지시를 전달했다. 서 단장은 “연구원이 태만해 이런 불합격을 받았으니 책임을 통감해 더욱 심기일전하라”면서 “부서장은 현장을 떠날 때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그해 9월부터 4개월간 교환기 4사가 생산한 제품에 대한 인증시험을 실시했다.

결과는 자동화 기능 등 일부 문제가 발견됐으나 성공이었다.

1986년 1월 한국통신의 인수시험이 끝나고 그해 3월 시험 생산한 9600회선 용량의 교환기 2만4000회선을 가평과 전곡, 고령, 무주에 각 6000회선 씩 설치했다.

1986년 3월.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홍성원)실은 전두환 대통령에게 TDX 개발 성공 결과를 보고했다.

보고서 내용을 보자.

“최대 연구개발 사업인 TDX를 국내 개발 및 상용화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정부와 기업, 연구소가 혼연일체가 돼 성공시킨 쾌거로서 우리나라도 최첨단전자통신기술을 확보하게 돼 외국과의 구매 및 기술협력 능력이 대폭 강화됐으며 수입원가 절감 및 수입 대체로 연간 최소 4000만달러의 외화절약이 가능하게 됐습니다. 향후 2000년까지 28억달러에 달하는 교환기수요의 상당부문을 국산으로 대체하고 수출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그해 3월 14일 오전 10시 반.

전북 무주와 경기 가평. 전곡, 경북 고령의 4개 지역에서 동시에 TDX-1A가 개통됐다.

이자헌 체신부 장관(민자당 원내총무 역임, 현 새누리당 고문)은 무주전화국에서 열린 개통식에 참석, “정부가 선진 정보화 사회를 앞당겨 구현하기 위해 외국에 의존하던 전자교환기를 우리 기술로 개발하는데 성공했다”면서 “이를 계기로 우리가 기술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TDX 개발은 한국 통신혁명의 첫 결실이자 세계 10번째 기술쾌거였다. 미지의 세계에 도전한 이들의 열정과 집념은 한국 통신혁명의 꽃을 활짝 피게 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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