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안철수 전(前)과 후(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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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늘 `있고, 없고`의 차이를 구분하기 좋아한다. 꼭 어린아이에게 엄마의 존재를 각인시키려 하는지 몰라도 “너 엄마 없으면 어떻게 할래”라는 짓궂은 질문하기를 즐긴다.

서양은 인류의 기원을 문명의 힘에 따라 그리스도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 우리나라 근대사도 일제 강점 이전과 이후로 갈린다. 한국전쟁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도 있다. 현대 정치사도 10·26 이전과 이후로, 통치 형태는 군사정권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오늘 안철수라는 자연인이 대한민국 정치 전면에 나선다. 물론 그는 기성 정당에 속하지 않은 채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 최대 영향을 끼쳤다. 그가 뜻한 결과로 이어졌다. 이때를 한국 정치사는 안철수가 있고, 없고의 분수령이 된, 낡은 정당 정치의 쇠락으로 기록할지 모른다.

이번에는 한국 정치의 한복판인 대선 판으로 옮겼다. 2012 대선은 민주 대 반민주니, 개혁 대 보수니 하는 기존 정치 프레임이 사라졌다. 상대적 보수·안정층 표를 모아 재집권을 노리는 여당조차 혁신을 제1 구호로 부르짖고 있으니 혁신 대 반혁신 대결 구도는 많이 흐려졌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부활 이후 야당이 줄곧 써오던 정권교체란 구호도 현실적으로 시들해지긴 마찬가지다.

국민들은 이번 대선을 새로운 대안 정치 대 기성 정치의 대결로 받아들인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이 안철수인 셈이다. 안철수란 인물은 이미 1990년대 벤처를 창업한 의사 출신 IT 기업인으로, 성공한 벤처 사업가로, 뛰어난 학식의 교수로 잇따라 큰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이전까지만 해도 그는 한국 정치에 없었다. 앞으로 현대 정치사를 안철수가 없었던 시절과 있었던 시절로 구분하려는 사람들은 기존 정치 틀의 변화를 그만큼 갈망하는 것이 아닐까.

그는 지난 7월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최고경영자(CEO)일 때 어떤 사람을 뽑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I may be wrong(내가 틀릴 수 있다)`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 자신감의 표현, 의사소통, 발전 가능성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1987년을 포함해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내가 틀릴 수 있다`고 말한 후보를 보지 못했다.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틀리든 맞든 나 아니면 안 된다`였다. 이런 아집을 갖지 않은 이가 정치판에 뛰어든 것 자체는 그 성패를 떠나 한국 정치로서는 큰 진전이자 자산이다.

지겹고 낡은 정치 시스템에 지친 국민들은 이번 대선에서 신선한 기운을 느낀다. 오는 12월 응어리진 마음을 풀고 한바탕 축제를 즐길 수 있다는 기대도 조금씩 커졌다. 기성 정치권을 불신하는 이들은 안철수의 19일, 그리고 그 다음 행동을 기다린다. “말이나 생각이 그 사람이 아니라 행동과 선택이 그 사람”이라고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진호 경제금융부장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