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우리나라는 1960년대 국민소득 79달러인 최빈국에서 반도체, 정보통신, 가전, 자동차, 조선 등 주력산업을 중심으로 성장을 거듭해 세계 12위 경제강국이 됐다. 그러나 1995년 이후 8년간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에 묶여 있는 가운데 세계 경제 불확실성 확대와 중국의 급부상 등 경쟁 악화로 인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확대되고 있었다.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국가 역량을 집중해 미래 성장 잠재력을 높이고 국민소득 2만달러 선진경제로 도약하기 위한 미래 먹을거리 발굴에 나선다. 반도체 이후 우리 산업계가 먹고살 것이 무엇인지에서 출발한 고민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2월 취임사와 3월 국정토론회에서 향후 5~10년을 대비한 성장동력과 신산업 육성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등 관련 부처가 미래 유망기술 및 품목 134개를 우선 선정하고 이를 대상으로 세계시장 규모, 전략적 중요성, 시장·기술의 변화 추이, 경쟁력 확보 가능성, 경제·산업에 대한 파급효과 등을 기준으로 최종 10대 산업을 선정하게 된다.
선정된 10대 산업은 △디지털TV·방송 △디스플레이 △지능형 로봇 △미래형 자동차 △차세대 반도체 △차세대 이동통신 △지능형 홈 네트워크 △디지털콘텐츠·SW 솔루션 △차세대 전지 △바이오신약·장기 등이다.
지금 우리 산업의 주력으로 성장했거나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산업의 핵심으로 떠오를 수 있는 분야들이다. 하지만 이들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산업 선정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을 겪어야 했다.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등 당시 관련 부처 간 주도권 경쟁이 너무 치열하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부처 간 주도권 잡기=차세대 성장동력 선정은 기획 단계부터 순탄치 않았다. 범정부 차원에서 시도되는 사실상 첫 초대형 장기 연구개발(R&D) 프로젝트란 점에서 부처 간 주도권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발단은 지난 2003년 3월 과기, 정통, 산자부가 각각 노무현 대통령에게 비슷한 내용의 업무보고를 하면서 시작됐다. 비슷한 시점에 3개 부처가 유사 프로젝트를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한 것이다.
각 부처가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각각 추구하는 방향과 목표는 같을지 몰라도 서로 추진체계와 이해관계는 달랐다.
먼저 차세대 성장엔진 발굴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과기부와 산자부는 `기술`을 강조하는 과기부와 `산업`을 강조하는 산자부의 논리싸움으로 전개했다.
과기부는 5∼10년 후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미래 기술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니 만큼 국가 R&D 주무부처인 과기부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산자부는 기술은 결국 제품에 녹아드는 것이며 이 프로젝트가 장기적으로 산업의 중심이 될 일류 제품을 만들자는 것이므로 산자부가 중심에 서는 게 맞는다는 방침을 견지했다.
추진주체와 체계에서는 정통부는 한발 물러서 있었다. 정통부는 성장엔진 중 IT 분야만 주관하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추진 주체에 따라 차세대 성장엔진 발굴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프로세스도 달랐다.
`포스트 반도체-초일류 기술 국가 프로젝트`란 당시 과기부 안에 따르면 프로젝트의 추진주체는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위원회다. 국과위를 축으로 이하에 부처별로 두 명씩(한 명은 민간전문가) 참여하는 `미래전략기술기획위원회`를 설치하고 실제 아이템 발굴 및 개발은 부처별로 균등하게 추진하도록 돼 있다.
반면에 산자부의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 및 육성` 안은 기본적으로 국무조정실을 정점으로 한다. 따라서 국무조정실을 축으로 산자부가 전체적인 실무 시스템을 총괄하고 관련 부처가 개발을 담당하는 형태다.
그러나 과기부는 국무조정실, 산자부는 국과위를 서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국과위는 과기부가 간사를 맡고 있어 과기부 지향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게 산자부 생각이었다. 과기부는 기존 국과위가 있는데 굳이 국무조정실에 새로운 추진체계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구체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정통부도 산자부와 경쟁이 불가피했다.
디지털TV는 수신기 분야가 산자부 몫으로, 정통부는 기술표준화·방송서비스 등으로 영역을 차별화한 것처럼 조정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었다.
◇1차 조정, 또다시 불거진 주도권 경쟁=노 대통령까지 중재에 나섰지만 난항을 거듭하던 부처 간 치열한 경쟁은 2003년 7월 23일 김태유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실과 과학기술자문회의,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위해 긴급 구성한 24명의 산학연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10대 후보군을 확정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해 8월 22일에는 정부가 차세대 성장동력 추진계획도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 계획 발표 이후에도 주도권 경쟁은 지속됐다.
과기부는 2003년 9월 11개 분과에 130여명의 전문가를 동원한 차세대성장동력추진기획단을 발족하고 기술개발에 나섰고 산자부도 후속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20개 산업별 기획단에 430명에 이르는 대규모 민관추진단을 발족시켰다.
정통부 역시 IT 신성장동력 추진위원회를 열고 산업별 총괄책임자(PM)를 임명해 세부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부처별 독자노선 추구에 따라 산학연 전문가가 따로따로 기획에 참여하는 형태였다. 국가적 낭비며 전문가집단의 패거리 문화 조장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꼬리를 물었다.
3개 부처가 후속조치로 내놓은 차세대 성장동력산업 아이템도 조정 이전의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과기부는 당초 발굴한 49개 초일류 기술을 9월 후속조치 이후에도 그대로 가지고 나왔고 이중 상당수가 산자·정통부 개발영역과 중복됐다.
산자부 역시 그해 5월 세미나 등에서 결정한 미래전략산업·주력 기간산업·지식기반서비스산업 등을 3각 축으로 한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 프로젝트` 카드를 그대로 적용했고 정통부도 차세대 디스플레이를 빼고 차세대 광대역통합망을 추가한 `9개 IT 신성장동력`을 고수했다.
◇재조정 거쳐 최종 확정=부처 간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얽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차세대 성장엔진 발굴 프로젝트를 겨냥한 부처별 기획은 목표가 같은 만큼 조정이 불가피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인수위 시절부터 각 부처 간 정책조율을 유달리 강조했고 투자비만 수조원대에 이르는 매머드급 국가 개발프로젝트를 동시에 두 개씩 추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관련 부처를 포함한 12개 부처 관계자들이 참석해 논의를 거듭한 끝에 2003년 12월 결국 담당 부처가 재조정됐다.
당시 김진표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주재로 열린 관계 장관 회의를 통해 산자부가 디스플레이 등 5개, 정보통신부가 디지털TV 등 4개, 과학기술부가 바이오 신약 등 1개 산업의 주무부처로 관련 지원업무를 주관하기로 결정했다.
또 국가과학기술위원회(위원장 대통령) 산하에 차세대성장동력추진특별위원회(위원장 경제부총리)를 설치, 부처 간 업무조율을 맡기기로 했다.
당시 조정에 의해 정통부는 △디지털TV·방송 △차세대 이동통신 △지능형 홈네트워크 △디지털콘텐츠·SW솔루션 4개 산업을, 산자부는 △지능형로봇 △디스플레이 △미래형자동차 △차세대 반도체 △차세대 전지 5개 산업을 각각 맡아 육성하기로 했다. 또 과학기술부는 바이오신약산업 지원을 전담하게 됐다.
정부 부처별 특성에 따라 역할을 분담한 것이다.
이후 2004년 1월 9일 경제장관간담회 및 3개 부처장관 정책간담회에서 산업별 실무위원회 및 2004년 4월 20일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차세대 성장 동력사업의 범위, 규모 등을 결정했다.
2004년 5월 10대 `차세대 성장동력 사업별 추진전략 수립 및 종합실천계획(안)`을 마련, 2004년 8월 주관부처별로 사업공고, 과제선정 등을 완료하고 기술개발에 본격 착수했다.
10년이 지난 2012년 10대 차세대 성장동력 중 디스플레이, 반도체, 차세대 전지 등 상당수 산업은 세계 1위에 올라 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