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과학인재 양성을 위해 운영되던 일부 과학고에서 졸업생 30~40%가 의과대학에 진학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과학기술계에는 충격이었다. 과기 발전 선두에 서야 할 미래 인재가 의료 분야에 집중된다는 사실은 이공계 기피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게 된 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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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이공계열 대학에서 미등록 사태가 발생하고 이공계 휴학생이 대거 나타나는 등 이공계 기피 현상을 알리는 새로운 지표가 연이어 던져졌다. 1960~1970년대 산업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한 이공계 선호 현상이 역전되면서 정부와 과기계에서는 원인과 해법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공계 기피현상의 원인은 결국 `이공계 인력 처우` 문제였다. 2002년 4월 대덕밸리 과학기술인 200여명을 상대로 설문조사에서 이공계 진학 기피 원인으로 `낮은 경제적 대우(43%)`와 `사회적 위상 저하(40%)`가 주원인으로 지적됐다.
산업계 인력 수급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2002년 6월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는 산업기술인력수급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청소년-이공계 대학-산업현장으로 이어지는 인력 수급경로를 개편하지 않으면 `2010년 세계 초일류 산업 강국으로 도약`이라는 비전을 달성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당시 산자부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반도체·전자·자동차·기계 등 주력 기간산업은 2006년 이후 질적 수준 저하는 물론이고 절대적 수에서도 연평균 1만8000여명의 기술인력 부족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산자부는 이공계 기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장학기금 마련, 연구비 지원 등을 계획했다.
이공계 기피현상은 정치권에서도 도마에 올랐다. 이공계 출신이 정책결정권자에 오르기 힘든 정부 인사정책 개선에 파격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새 정부를 꾸리게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술고시 등 공직의 기술직 채용 비율을 24.7%에서 최소 임용비율 할당제를 도입해 단계적으로 높여가고 정부 3급 이상 고위직에 30%는 과학기술인으로 채운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2006년 즈음에 억대 연봉 연구원이 늘면서 파격적인 대우를 받는 사례가 종종 나타나면서 과학기술 연구 분야 사기진작과 이공계 위상이 높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구직난에 허덕이며 엔지니어 밤샘 업무가 일상이 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사회에서 엔지니어에 대한 존경을 기대하기 어렵고 가족을 챙기는 것이 힘들다는 의견도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의 이공계 기피현상 해소방안은 파격적이었지만 생각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5년 동안 기초연구 투자는 이전 정권에 비해 두 배가량 증가했지만 이공계 고급 두뇌 유출과 이공계열 대학 기피현상을 해결하지는 못했다. 많은 지원 제도가 나왔지만 정책 수준에서 머물렀다는 평가다.
이명박 정부도 출범과 동시에 이공계 기피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인력 양성 지원 방안을 내놓았다. 2008년 12월 교육과학기술부는 대학 자율 경쟁 체제와 강화, 교육-연구의 전략적 연계, 해외 인력 교류 확대 등을 제시한 `인재대국 실현을 위한 이공계 인력 양성 지원 기본 계획` 수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공계 출신 인력의 처우 문제와 이공계열 진학 기피현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공계 지원 육성에 대한 투자 대비 효과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과학기술을 상용화하는 산업계에서는 여전히 고급 인력 수급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전자·통신·기계 등 과학기술을 기본으로 하는 산업계에서는 “이공계 인력을 받아도 재교육에 투자하는 비용이 너무 많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공계 기피 현상은 단순 관심 부족 현상을 넘어 인력의 질 저하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과학기술 거버넌스에 대한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면서 교육과 과학기술을 통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려고 노력했다. 취지는 좋았다. 이공계 인재 양성을 위해 기초부터 튼실히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새로 출범한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이 너무 교육 중심적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교육을 지상과제로 삼는 우리나라 문화에서 교육과 과학기술의 융합은 오히려 과학기술을 천대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지적이 만연했다.
이공계 기피현상은 사회 곳곳에서 문제점이 터져나온 만큼 정책적 방어전략도 많았다. 하지만 대다수 대응책이 이공계 기피현상의 `근본적 원인`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이공계. 존경받지 못하는 공학 인재는 `두뇌유출`이라는 새로운 현상도 만들어냈다. 과학기술에 뜻있는, 능력있는 이공계 인력이 삶의 터전을 해외에서 마련하는 것이다.
익숙해져버린 `이공계 기피 현상`만큼 해결 방안과 정책도 식상해졌다는 평이 많다. 2000년대 지펴졌던 불씨가 아직도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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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진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연구팀 위원장 겸 재료공학부 교수
“근본적 원인은 이공계 분야에 대한 처우와 지원 부족이라고 봅니다.”
강태진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연구팀 위원장(재료공학부 교수)은 이공계 기피 현상의 시작점을 여기서 찾았다. 우리나라 이공계 졸업생이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인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을 가지고 있다고 강 위원장은 지적했다. 사회적 지위, 보상체계, 안정성 등 경제적 원인으로 인해 인재들이 이공계 분야에 등을 돌린다는 의미다. 강 위원장은 “우리나라에는 이공계 고급 인력이 일할 자리가 부족하다”며 “연구원이 평생 일할 자리가 부족하고 대학 교수직도 한정돼 있다는 것이 과학계의 구조적 문제”라고 밝혔다.
“1960~1970년대 우리나라의 많은 우수 인재가 해외에서 유학하거나 트레이닝을 받았습니다. 이후 해외에 그대로 정착한 사례가 많습니다. 이제부터는 이런 해외 우수 인재들이 해외 경험을 살려 고국을 위해 공헌할 수 있도록 민간, 정부, 연구계에서 합심해 인재 유치에 나서야 합니다.”
강 위원장은 해외 우수 인재를 유치하는 `브레인 리턴` 활성화를 강조하는 한편, 국내에서 우수 이공계 인재를 양성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사례를 든 강 위원장은 “몇 년 전까지 일본 도쿄대 교수 가운데 외국 박사학위를 가진 비율은 5.2%에 불과했다”며 “고등교육에 지속적으로 투자한 결과 우수 이공계 인재 양성의 틀을 단단히 다졌다는 것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말했다. 일본은 이미 세계 대학 평가에서 상위권에 든 대학이 많기 때문에 굳이 외국 유학이 필요없다고 강 위원장은 덧붙였다.
“이공계 르네상스를 위해서는 초·중·고 교육과정부터 개편돼야 합니다. 과학자나 엔지니어를 꿈꾸는 초등학생이 여전히 많지만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이공계 진학은 급격히 감소합니다.” 강 위원장은 이공계 기피현상의 시작점인 교육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파악해 하루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대학을 중심으로 한 고등교육 정책의 문제점도 꼬집었다. 강 위원장은 “서울대 공과대학 박사과정은 3년째 대규모 미달사태를 보였다”며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학부 정원 감축을 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원에 진학할 학부생 수가 줄면서 고급 인력인 석·박사급 인력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강 위원장은 “학생 수 감소로 공과대학에서는 산업계에 필요한 우수인재를 양성하고 배출할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며 “최종적으로 국가 미래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석사는 2000년 전체 19.6%였던 공학계열 재학생 비중이 지난해 13.6%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공학박사 비중은 30%에서 20.8%로 10%포인트가량 줄었다.
강 위원장은 “이공계 인재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미래 가능성과 안정성을 제공하는 것은 사회의 몫”이라며 “박사 과정 중에 발생하는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사회와 정부의 책임을 강조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