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16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 입지가 대전 대덕연구단지로 결정될 때까지의 여정은 길고도 험난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 100년 대계의 기초가 될 과학벨트는 지방자치단체 간 치열한 유치경쟁에다, 세종시 입지와 맞물리면서 전국적인 논란의 중심이 됐다.
과학의 토대를 세우는 일에 정치권의 입김과 지자체 과열 유치경쟁이 뒤엉켜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고, 모두에게 씁쓸한 뒷맛을 안겨줬다.
◇과학벨트는 연구·금융·산업 종합세트=과학벨트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기초과학을 획기적으로 진흥시키기 위한 종합단지다. 기초과학 연구와 교육, 국내외 우수 과학자들이 살 수 있는 주거환경, 연구성과를 비즈니스로 연결해 금융과 산업기능까지 단단한 벨트처럼 엮겠다는 의미다.
정부도 기획 당시 `기초과학을 획기적으로 진흥시키고, 기초과학 연구성과가 미래 우리나라 성장동력의 씨앗이 되도록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과학벨트에는 세계적인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 등 대형 연구시설을 설립하고, 연구를 수행할 우수한 인적 자원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시설을 갖춘다는 비전을 담았다. 여기에 투입될 예산만 3조원이 넘는다.
◇`은하도시`에서 `과학벨트`로=과학벨트의 시작은 순수했다. 태동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민동필 등 과학, 예술, 인문학 교수들은 `랑콩트르(Rencontre:만남)` 모임을 갖고, 세계 일류 과학자가 모여 자유롭게 토론하고 연구하는 과학과 예술이 결합된 공간을 구상했다.
이 구상은 이듬해인 4월, 대선주자였던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은하도시`라는 이름으로 보고됐다. 2007년 8월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공식후보가 된 뒤 `은하도시`에는 산업과 교육의 개념이 추가됐고, 프로젝트도 대형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그해 11월 한나라당은 명칭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로 바꾸고 일류국가비전위원회 과학기술분야 대표 공약으로 확정했다.
이 대통령이 당선된 후 2007년 말 인수위에 과학벨트 TF팀이 꾸려졌다. 다음해 2월엔 대통령직 인수위가 대통령에게 관련 보고서를 제출했다. 과학벨트는 2008년 10월 정부 관련 부처로 구성된 과학벨트 추진지원단, 토론회와 정부출연연구소 간담회, 전문가 세미나, 공청회 등을 거치며 구체화됐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추진지원단이 제출한 과학벨트 종합계획을 2009년 1월 심의 확정했다. 그리고 2010년 1월 `과학벨트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논란의 시작=하지만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은 과학벨트 구축사업은 이때부터 지역 간 유치경쟁과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논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약 256조원이 넘는 생산유발효과와 225만명에 이르는 고용창출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제적 효과가 부각되자 지자체가 벨트 유치에 사활을 걸고 나선 것이다.
대경권에서는 2009년 3월 대구경북연구원과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등 지역 내 기관장들이 총동원돼 과학벨트 지역 유치를 촉구했다. 대경권뿐만 아니라 당시 거의 대다수 지자체가 과학벨트 유치에 발 벗고 나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권도 이에 가세했다. 2009년 2월 자유선진당은 과학벨트의 충청권 입지를 특별법에 명기해줄 것을 골자로 한 의견서를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지자체와 정치권이 유치 과열 양상을 보인 가운데 당시 정운찬 국무총리는 2009년 9월 세종시 정부청사 이전 반대를 표명하고 나섰다. 세종시 입지가 과학벨트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는 순간이다.
이듬해 1월, 정부는 정부청사 세종시 이전 대신 과학벨트를 세종시에 설치하고, 세종시 개념을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교육과학 중심 경제도시`로 바꾸는 세종시 수정안을 내놓았다. 과학벨트가 세종시 대안용으로 지목되면서 정치적 이슈로 변질됐다.
여야의 대립 속에 과학벨트 특별법도 표류했다. 기초과학연구원 설립을 위한 예산 확보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교육과학 중심 경제도시로 바꾸려는 세종시 수정안은 2010년 6월, 반대 164표, 찬성 105표로 부결됐다.
◇과학계의 압력=세종시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과학벨트 입지 선정을 둘러싼 지자체와 정치권의 다툼은 더욱 거세졌다. 과학계도 보다 못해 실력행사에 나섰다.
2010년 10월부터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석·박사급 이상 과학기술전공자를 대상으로 과학벨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였다.
당시 박원훈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은 “과학기술이 국가발전의 기반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어떤 이유에서든 특별법이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국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와 기초과학관련학회협의체도 노벨과학상과 과학벨트포럼을 개최, 특별법의 연내 국회통화를 촉구했다. 당시 행사장에는 한 연구생이 특별법 통과를 요구하는 피켓까지 들고 나와 눈길을 끌기도 했다.
당시 과학기술계 원로들도 1년 이상 국회에 계류 중인 특별법을 하루빨리 통과시켜 사업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국회는 2010년 12월 8일 과학벨트 특별법을 의장 권한으로 본회의에 직권 상정해 통과시켰다.
특별법이 통과됐지만 이 대통령은 과학벨트 충청권 유치에 대해 `공약집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며 사실상 입지 관련 원점 검토를 시사하면서 또 한 번 지역 간 유치경쟁 구도를 만들기도 했다. 특별법이 통과된 후 5개월 동안 우여곡절 끝에 과학벨트 입지는 결국 대전 대덕단지로 최종 확정됐다.
◆ 민동필 대통령인수위 과학벨트 TF팀장(현 외교통상부 과학기술협력대사)
2005년 당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처음으로 기획했던 인물이 민동필 외교통상부 과학기술협력대사(65)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과학벨트 TF팀장을 맡았다.
민 대사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와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 13개를 관장하는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과학기술계에서 풍부한 지식과 경험, 인적네트워크를 지닌 그는 지난해 말 과학기술협력대사로 임명돼 과학외교 선봉에 나서고 있다. 민 대사는 임기동안 과학벨트를 해외에 알려 성공적으로 사업이 안착될 수 있도록 힘을 쏟을 예정이다. 다음은 민동필 대사와의 일문일답.
-과학벨트 기획 당시 역할과 기획 배경은.
▲서울대 물리학 교수로 재직할 때였는데 과학벨트의 모태인 `은하도시포럼`을 주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선진 한국으로의 꿈이 바로 과학벨트의 기획 배경입니다. 지식 융합과 소통으로 21세기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자는 것이지요.
마치 수에즈 운하를 만든 것과 같이 당장은 불가능해보이지만 결국 `큰일`이 될 것이라고 믿었죠. 21세기의 쌀이 지식이라면 지식의 핵심은 창의성이고, 그것을 발휘할 `은하도시` 환경을 추구하자는 것입니다.
-현재 과학벨트와 당시 구상했던 은하도시와의 차이가 있다면.
▲우리가 구상했던 `은하도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미래도시입니다. 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원에 국한된 지금의 과학벨트는 이 같은 꿈에 미치지 못합니다.
미래도시는 과학과 예술, 인문과 산업이 창조적으로 결합돼야 합니다. 창의성이 맘껏 발휘돼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이 진정한 `은하도시`입니다.
-과학벨트에 보강할 점이 많다는 말씀인가요.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이 있지요. 시작은 미미하지만 터전을 잘 닦았기에 후손들이 거기서 뿌리를 내려 세계를 제패했지 않습니까. 물론 시작은 거창하지만 결과가 미미한 일이 주변에 많긴 하지만 기초부터 차근차근하게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추진해 나가야겠지요.
-기초과학연구 환경이 달라졌다고 보십니까.
▲기초과학의 성과는 모태기간이 깁니다. 좋은 학자들을 외국에서 많이 모셔오는 노력도 했고, 연구비도 늘었는데, 실상 연구비를 집행하는 방식은 별로 나아지지 못했어요.
창의성 경영을 못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블록펀딩을 한다고 하지만 자율권이 없다면 색깔만 흉내낸 것입니다.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직 신명나게 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안타깝죠.
-과학벨트 성공을 위해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은.
▲새로운 가속기를 건립하는 것은 우리나라 미래산업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기초과학연구원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인재들을 유치 및 배양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이 과학벨트의 다가 아닙니다. 창의성이 샘솟는 환경이 같이 기획돼야 합니다. 소통과 융합의 새로운 지식도 연구되고 길러져야 합니다.
언론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국민의 관심이 없는 어떤 것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겁니다. 언론은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알려주고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더 많은 지면을 새로운 지식과 그 지식을 만들고 있는 조용한 연구자들의 노력에 맞춰주기 바랍니다. 과학벨트 추진과 관련해서는 `서두르지 말고, 맡기고 기다리자`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과학계 특히 기초과학계에는 `실패를 두려워 말자`는 말도 해주고 싶습니다.
-향후 계획은.
▲제가 맡은 과학기술협력대사는 과학과 기술을 이용한 외교를 펼치는 것입니다. 세계화 시대를 맞이해 이제 지구적 의제(글로벌 이슈)는 어떤 나라도 피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이를 위해 과학 분야에서 범지구적 협력체계를 구축해야합니다. 특히 가난한 나라에 필요한 적정기술을 이전해주기 위해 `적정기술 이전을 위한 개방적 지식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표] 과학비즈니스벨트가 걸어온 길
2005년 과학·인문·예술계 학자 그룹 `랑콩트르`모임
2006년 4월 과학벨트의 모델인 `은하도시` 이명박 서울 시장 보고
2006년 9월 사단법인 과학과 예술이 만나는 `은하도시 포럼` 창립총회
2007년 8월 이명박 후보 한나라당 공식 후보 선정
2007년 12월 한나라당 충남도 대선공약집에만 과학벨트 공약 수록
2007년 12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인수위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TF팀` 설치
2008년 2월 인수위,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과학벨트 보고서 제출
2008년 10월 교과부, 지경부, 국토해양부 등 `과학벨트 추진지원단` 출범
2009년 1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본회의, 과학벨트 종합계획 심의, 확정
2009년 2월 정부, 과학벨트 특별법(안) 국회에 제출
2009년 9월 정운찬 총리, 세종시 정부청사 이전 반대 표명
2010년 6월 정부 세종시 수정안 국회 본회의 부결
2010년 12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
2011년 4월 7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위원회 출범. 본격 논의 시작
2011년 5월 16일 과학벨트 최종 입지 대전 대덕단지선정 발표
대구=정재훈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