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은 경제성장과 국민생활 안정에 가장 역점을 두고 전개됐다. 에너지 저가격 정책에 따라 과소비 행태가 지속돼 온실가스 감축이나 효율화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졌고 이는 에너지기술 개발 성과가 확산되는 데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산업발전과 경제성장을 위한 단방향, 공급자 중심의 중앙집중형 에너지 시스템인 `자원개발 및 도입+에너지공급시설 확충` 에너지 전략은 현재 에너지·기후변화 위기상황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전력수급계획과 수요관리정책의 연계 부족으로 전력 수요예측에 난항이 초래되고 있다. 수요관리 측면인 에너지절약 정책도 단순한 캠페인과 경제활동 억제 등 인위적 감축을 추진하는 것은 기술개발과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것보다 실효성이 낮다.
일본이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고에너지가격정책을 시행하고 1998년부터 `톱러너(Top-Runner·에너지효율목표관리제)`를 실시하는 등의 노력으로 세계 최고 수준 에너지효율을 달성한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에너지 기술개발은 수요관리 대응 전략을 마련해 분산전원체계를 활성화할 연구개발(R&D)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공급설비 확대는 단기간에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는 점 외에도 원자력, 온실가스 저감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기존 전력수급계획에 따른 대책은 `블랙아웃` 예방에 한계가 있다.
향후에는 수요를 조절해 전력수급에 대응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대규모 전력시스템과 소규모 분산시스템 사이에 적정한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수요관리로 전력수급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시장시스템을 개선하고, 이에 앞서 수요관리를 활성화할 수 있는 사업모델과 시장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발전소를 확충하지 않고 단기간에 발전원을 확보해야 하므로 국내에 산재한 다양한 설비를 통합해 활용하는 가상전력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수요조절을 위해서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신재생에너지 등 분산발전, 차량용 배터리를 가상 전원으로 활용하는 V2G(Vehicle to Grid) 등 요소기술과 시스템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에너지효율 향상 기술은 수요관리와 온실가스 저감 등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해법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에너지기술 전망 시나리오에서 향후 에너지효율 향상 기술로 온실가스를 31%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제시했다. 매킨지는 냉장고, 온수기, 주방용품, 창문 등의 에너지효율을 높이면 2020년에 미국 주거용 빌딩의 전력소비를 33% 이상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나라도 최근 가전제품이 정보통신기술(ICT)과 접목돼 전력사용이 증가하는 추세다. 스마트TV가 쓰는 대기전력은 1W 이하지만 셋톱박스는 통신을 위한 네트워크 대기상태 탓에 10∼20W의 많은 대기전력을 쓴다. 또 기술 수준이 일본의 80∼90% 정도에 불과한 국내 인버터, 산업용 모터, 전력반도체 등을 감안할 때 에너지 다소비기기의 효율 향상을 위한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고효율 에너지기기 보급을 촉진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이 따라야 한다.
이제 단일 기술의 한계를 극복할 융·복합 시스템 기술을 개발하고 틈새시장을 창출해 사회적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 새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 기업의 수익모델로 확산할 수 있는 전략적 R&D로 에너지 기술정책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원장묵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전략기획본부장 jmwon@ketep.re.kr
-
함봉균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