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인더스트리(이하 코오롱)가 진퇴양난의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미국 법원이 듀폰의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코오롱에 대해 내린 파라계 아라미드 생산 자체를 금지한 탓이다.
코오롱은 방탄복 등에 쓰이는 파라계 아라미드를 현재 구미 공장에서 만들고 있다. 미국 내에는 제조 기반이 없다. 따라서 미국 법원의 생산 금지 명령은 당장 효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각국의 독립된 사법 체계로 한국 내 생산 금지를 강제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효성 측면에서 이번 명령이 발휘할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창훈 아주양헌 변호사는 “생산을 지속할 경우, 법정모독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미국 버지니아 동부법원은 코오롱이 듀폰의 영업비밀을 침해한 사실을 받아 들였다. 그 결과가 생산 및 판매 금지 명령으로 나타났다.
법원은 그러면서 듀폰 관련 문서를 비롯해 듀폰 제품 비밀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전부 되돌려 주라고 했다. 영업비밀 침해를 심각히 여긴 것이다.
이 변호사는 “법원의 판결은 영업비밀, 기술을 사용하지 말라는 내용이기 때문에 코오롱이 다시 아라미드 생산하는 것 자체가 법원의 명령을 어긴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며 “듀폰이 법정모독으로 다시 법원에 제소할 경우 벌금이나 손해배상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미국 판결이라 해도 한국 내 생산에 차질을 입힐 수 있다는 얘기다.
아라미드는 코오롱이 야심차게 추진한 차세대 핵심 사업이어서 차질을 빚을 경우 큰 파장이 예상된다. 코오롱은 1979년부터 상용화를 위해 2000억원을 투자했다. 2006년 1000톤이던 생산량은 2010년 5000톤으로 늘렸고, 매출액도 증가하며 성장세에 접어드는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1조원대의 손해배상과 생산 금지 명령을 받은 것이다.
삼성의 특허소송 완패에 이어 코오롱도 큰 타격을 입으면서 최근 제기되고 있는 미국 법원의 편파 판정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 코오롱은 재판 과정에서 코오롱에 유리한 증거와 증언이 배제되고, 재판의 절차적·관할권상 오류 등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코오롱 측은 “첨단산업 기술을 일방적인 잣대로 무력화시키는 미국 거대 기업의 횡포에 당당히 맞설 것이며 앞으로 야기될 고객과 투자자, 나아가 국가 경제에 가해질 모든 피해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코오롱은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는 한편 항소심을 통해 불공정한 판결을 바로 잡겠다고 강조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